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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토리 지구별여행] 물안개 속에서 발견한 시적 풍경 '윈더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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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토리 지구별여행] 물안개 속에서 발견한 시적 풍경 '윈더미어'
  • KNS뉴스통신
  • 승인 2017.03.1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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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차가 섰길래 별 생각 없이 여행일지를 뒤적였다"

자동차를 끌고 무작정 영국으로 넘어온 이래 거기엔 여러 가지 의미심장한 말들이 정말 수두룩하게 적혀 있었다. ‘영국에서 자동차로 여행하는 것은 찰스 디킨스의 팍팍했던 어린 시절을 똑 같이 경험하는 것이다‘ 라던가  ‘굳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을 잘 계획이라면 반드시 호텔비를 준비하라’ 라던가... ‘글래스고의 주유소에서 길을 안내해 주겠다고 다가오는 나이 든 택시운전사가 있다면 그냥 무시하라’ 등의 다소 냉소적인 반응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프랑스 깔레를 떠나 영국의 도버로 건너가는 페리에서>

                                                                                                           <연말연시 런던의 시가지 풍경>

왜 그랬지? 런던에서 맨체스터 그리고 리버풀과 에든버러까지 가는 여정 동안 그렇게 나쁜 기억들이 없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 곧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사실 나는 즐겁게 여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여행일지에는 그런 글들이 수두룩하게 적혀 있었던 것일까? 그 해답의 실마리를 나는 영국 북서부 레이크 지방의 작은 호반도시 윈더미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윈더미어, 영국 북서부의 Westmorland에 있는 호수>

그건 아주 작고 사소한 그렇지만 인생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어떤 마음가짐이자 자세였다. (얼래? 너무 진지한 거 아냐?) 사실 불편한 것을 마다하지 않는 여행자조차 자신의 여행길만 그렇게 다짐했지 기존의 살아가는 행동방식에 대한 편안함은 아직도 마음속에 쥐고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익숙함에 대한 편견이었다.

영국 북서부를 여행하다 보면 반드시 맞닥뜨리게 된다.

윈더미어는 면적 900평방 마일에 달하는 레이크 지방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호수에 인접한 작은 도시다.  레이크 지방은 16개의 자연호수와 대여섯 개의 저수지 그리고 2,000피트가 넘는 산이 무려 180개나 몰려있고 이중 4개는 3,000피트가 넘는 고봉이며 현재 지방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스코틀랜드의 민둥산 '커크 스톤' 고개길에 눈발이 뿌려져 있다>

                                        <18세기 영국시인 토머스 그레이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커크 스톤의 음침한 도로길>

이런 험준한 레이크 지방 국립공원 북쪽에서 내려올 때 케스윅을 거쳐 윈드미어로 도착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커크 스톤이란 산이다. 재미난 사실은 이 커크 스톤은 (우리도 이리 넘어왔지만 황량 그 자체다) 레이크 지방의 역사를 대변하는 황무지 민둥산으로 그간 수많은 영국인들이 이곳을 황량하고 두려운 곳으로 인지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영국시인 토머스 그레이(Thomas Gray)>

고맙게도 실례가 존재한다. 1771년까지 살았던 영국 시인 토머스 그레이(Thomas Gray)는 이 언덕과 호수가 그나마 볼만은 하다고 짐짓 일기에 기록하긴 했지만 그 자신은 정작 커크 스톤을 넘어갈 때는 무서워서 마차의 창문을 모두 내렸다고 한다. 그런 황량한 민둥산과 깊은 호수로 이루어진 레이크 지역은 이후 19세기 초 산업화에 밀려 시골 풍경을 잃은 사람들의 안식처로 그리고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로 인한 여행제한으로 (커피도 봉쇄되었다지 아마-그래서 티가 자리 잡게 되었다는) 내륙인들이 몰려들어 서서히 영국 북서부의 관광지로 찬란한 영화를 누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레이크 지방 여행의 시작이자 발원지

윈더미어는 이러한 굴곡의 역사를 지닌 영국 레이크 지방을 여행하는 시작이자 발원지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모든 정보를 얻어가고 여행을 시작한다. 윈더미어 호수에서 시작해 화산암 농가로 유명한 힐톱을 지나 호크스 헤드 그리고 에어러 포스 폭포와 더 원트 강을 따라 어둡고 험한 레이크의 심장부 보로데일을 지나 종착역인 시인 워즈워스의 생가가 있는 그래스미어까지 가는 여정의 트랙킹과 자동차 그리고 모든 열차가 이곳 윈더미어에서 출발한다.

 영국 여행의 특징적인 것들 역시 윈더미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갓 길이 없는 좁은 도로, 어디에 세워도 물어야 하는 살벌한 주차요금, 에누리 없는 물가(티백 한 개도 별도 요금 내야 함)와 교통딱지, 알아들을 수 없는 투박한 악센트까지 조금은 불편한 것들이지만 결코 참을 수 없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레이크 지방을 내려오면서 왜 이런 사소한 불편들이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또 그들이 지켜내는가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생각이 구체적으로 발현되어 납득이 가기 시작한 것은 윈더미어의 풍경을 눈으로 비로소 보고 나서였다. 첫 풍경은 황당하게도 ‘이게  뭐여?’였다. 시커먼 적벽돌의 커다란 굴뚝집들과 전혀 손대지 않은 거친 골목길 그리고 감동받지 못하는 호수의 풍경 말이다.

하지만 그 실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동안의 탐색전을 거치고 나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풍경은 인공적이지 않은 불편함의 전형이었다. 나지막한 언덕길을  요리해 지어놓은 고전적인 주변의 시골 마을과 고원 지대가 이루는 풍경은 워즈워스가 찬탄해 마지않던 바로 그 시절 그 풍경 그대로였다. 윈더미어는 바뀌지 않았다. 그 바뀌지 않음으로 탄생한 불편들을 사람들은 모두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다.

풍경을 돌아보라.

물안개가 자욱한 호수 위로 통통통 증기선이 지나간다. 나무로 만들어진 선착장에는 아름다운 요트들이 즐비하게 묶여 있다. 그 사이사이에 오리며 거위며 갈매기까지 사람들을 피하지 않고 마음대로 노닐고 있다. 사람들은 가족끼리 연인끼리 그 오래된 흔적의 호반의 주변을 거닐며 추억을 만끽한다. 모든 건물들은 주변의 풍경을 해치지 않는 낮은 고도의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완만한 능선을 타고 이루어진 마을에는 가족이 운영하는 숙박업소인 베드 앤 브랙퍼스트(B&B)와 아늑한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화려하지만 친근감을 잃지 않은 호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훌륭한 숙박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윈더미어는 풍경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누구나 원하면 즐길 거리들이 충분하다. 해안선을 따라 걷거나 고원을 오르는 하이킹과 등산, 수영, 카누, 수상스키, 요트를 즐기는 수상 레포츠, 그리고 여행객들을 매료시키는 멋진 상점과 술집, 레스토랑까지 시선의 낮음을 공유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여유로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중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깊디깊은 호수의 해안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익숙함과 편함에 길들여진 딱딱한 기억들을 지워보는 것이었다. 혼자면 혼자인 채로, 둘이면 둘인 채로 호수 윈더미어는 ‘트랜스 포머’적인 풍경이 전혀 없는 자연 그 자체로의 모습으로 물안개 속에서 그 길을 거니는 누구에게나 시인 워즈워스의 찬연한 시구를 흐릿하게  그려내주고 있었다.

나 역시 도착한 다음날 아침 물안개 속에서 어떤 시를 보았다. 거기엔 여행의 즐거움이 가득했으며 편안함과 불편함이 없는 윈더미어만의 즐거움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거늘  
늙어서도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바라노니 내 생애의 나날들이  
자연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기를.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

윈더미어 인근의 살아있는 산업박물관 <Matlock>

북서부 잉글랜드, 레이크 지방 국립공원의 주류인 더웬트 강은 영국에서 강수량이 가장 많은 지역인 시스웨스트를 지나 영국 산업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주요 마을들로 구성된 피크 지방 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데 이 지역 역시 영국을 여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여행코스이다.

그중에서도 매틀록은 영국 잉글랜드 중부에 있는 더비셔주의 주도로 미들랜드 지방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더웬트 강 유역의 여러 마을들로 구성되어 있다. 북부에서 중부에 걸쳐 페나인 산맥 남부의 구릉성 산지가 있고, 남부는 트렌트 강 유역의 저지대로 형성되어 있으며 페나인 산맥 동쪽 경사면에는 협탄층이 드러나 있어 오래전부터 영국의 손꼽히는 탄전지대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마을 곳곳에는 탄전 시대의 유물들과 집집마다 높은 굴뚝들이 남아있으며 마을 풍경 역시 영화 빌리 엘리엇의 배경이 되었던 폐광 시대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투박하지만 유서 깊은 그리고 언덕과 골짜기가 특히나 아름다운 매틀록은 자연보다는 산업의 역사를 더 많이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다.

오래전부터 로마인들이 윅스워스와 캐슬턴 사이에 있는 지역에서 납을 채굴했으며 이것이 19세기까지 계속되었다. 18세기에 리처드 아크라이트가 1771년 크롬퍼드에 최초로 수력식 면화 방적 공장을 세우면서 면직물이 유명해졌고 이 영향을 받아 물살이 빠른 하천의 수력을 이용하는 다른 여러 직물공장이 생겨났다.

현재는 낙농업 중심의 농업이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변화되었지만 더웬트 계곡을 따라 늘어선 주요한 공장의 흔적들은 찬란했던 산업혁명의 역사를 머금은 채 여전히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매틀록은 이러한 영국 산업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1년 12월에 세계 유산지로 지정되었으며 마손 밀과 크롬포드 밀 등 공장 박물관과 19세기에 생긴 온천지인 매틀록 배스 그리고 1852년에 세워진 행정관청 등 다양한 볼거리와 휴식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찾아볼만한 곳은 1991년까지 운영된 매틀록 배스에 위치한 리처드 아크라이트 경(Sir Richard Arkwright)의 마손 밀(Masson Mill)로 건물 안에는 뛰어난 직물 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1771년에 짓기 시작한 크롬포드 밀(Cromford Mill)이 나오는데 이곳은 세계 최초로 면사 방적 공장에 수력을 공급하는 데에 성공한 곳으로 유명하며 여기서 조금만 가면, 리 밀스(Lea Mills)의 존 스메들리 공장 상점(John Smedley’s Factory Shop)도 견학할 수 있다. <by 다모토리(최승희)·Jan25. 2016>

다모토리(최승희)

들러보면 좋은 곳

-더웬트 계곡 방문객 센터 (Belper)
-벨퍼 강 정원 (Belper)
-더비 시 박물관 및 미술관 (Derby)
-견방직 공장 산업 박물관 (Derby)
-존 스메들리 회사 (Matlock)
-아크 라이츠 크롬포드 밀 (Cromford)

KNS뉴스통신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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