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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일기] 삼성전자의 중국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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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일기] 삼성전자의 중국사랑?
  • 김성진 기자
  • 승인 2011.10.06 09: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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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S뉴스통신/베트남=김성진 기자] 호치민에 오기 며칠전에 큰맘먹고 노트북을 개비하였다.용산전자상가에서 큰 돈 주고산 나의 노트북은 삼성전자 중국공장에서 생산하였다.해외에서 쓸 노트북이니 a/s 받을일 없이 꼼꼼하게 부탁한다고 가게 주인에게 몇 번이나 당부했다.'SAMSUNG' 그이름은 꼭 달아야 했다.

왜냐하면 호치민의 어느까페에서 글을 쓰면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임을 은근히 자랑하고픈 속물적 생각이 있었나 보다.대만 아수스?델?컴펙? 훠~이 다 물렀거라...삼성이 나가신다.~값은 살짝 비쌌지만 나의 애국심과 자존심을 포기할 만큼은 아니기에 과감히 질렀다.

그러나 일은 벌어지고야 말았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호치민의 랜드마크빌딩,우리 자랑스런 한국기업 포스코가 떡하니 호치민 한복판에 지어놓은 다이아몬드플라자 노천카페에서 펼친 노트북은 어느순간 키보드가 밀려 ZZZZZZ를 계속 쳐 대는것 아닌가...순간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그간 상상해왔던 그림이 깨어진 것은 둘째치고  나의 자존심인 삼성노트북의 이 황당한 상황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은 아닐까하고 걱정이 되어서이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진 않은 것 같다.

혹시 뭐가 눌린건 아닐까..이럴리가 없는데 하며 전원을 껏다 켜보기도 하고 별 수단을 다 써 보았는데도 나의 자존심이었던 삼성노트북은 무참하게도 계속 ZZZ만 쳐대고 있다.할 수 없이 또 다른 나의 자존심?삼성 갤럭시폰으로 어렵게 삼성전자 호치민 A/S 센타 전화번호를 입수하여 전화를 한 순간...더이상 삼성은 나의 자존심이 아니었다. 전화에서는 알 수 없는 말(베트남어)을 해 댔고 나는 코리안,코리안을 맞 받아치는 핑퐁 몇번 끝에 전화를 받는 직원이 바뀌어 이번에는 영어로 대응하기 시작한다.나는 또다시 코리언,코리안을 말하였다.그러나 이 직원의 말은 자기네는 코리안 직원은 없고 베트남,영어,중국어 직원만 있다고 한다.절벽에서 가까스로 새끼줄 붙잡고 있던 나의 자존심은 그제서야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박살이 나고 말았다.

베트남에는 현재 8만7천여명의 교민이 살고 있다. 이중 호치민에만 7만명이 살고 있다.베트남내에서 거주하는 외국인 숫자로만 말한다면 1위이다. 2위가 중국으로 5만명이다.그러나 중국계 베트남인(호치민인구의 4%)을 합친다면 또 다른 해석이 되겠지만 어쨌든 삼성은 한국회사이고 호치민에는 7만명의 교민이 살고 있다.그러나 한국 직원은 없다.아니 다르게 표현하면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직원이 없다.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베트남인은 월 20만원에서 백만원까지 받는다. 그냥 일상적인 대화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정도의 직원은 월 50만원이면 된다. 그런 한국말 할 줄 아는 직원 하나가 없다. 세계경기가 안 좋아서 경비감축을 하나보다.하기는 7만명의 교민보다야 중국계베트남인들이 더 많으니 ...

고생고생해서 큰아들을 키워냈다.다른아이들은 학교에 못 보내도 큰아들만은 어떻게 해서든 공부시켜서 출세시켜야 집안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겠거니 하고 노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서 큰아들 뒷바라지를 해내야 했다.그러나 배우지 못하고 병약한 노모만으로는 큰아들 뒷바라지에 턱없이 모자라 여동생은 남의집 식모일을 해야 했고 작은아들은 탄광에 들어가서 탄을 캐야 했다.드디어 큰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국가고시에 당당히 합격하여 동네유지는 몰론하고 군수까지 인사를 오는 자랑스런 집안이 되었다.하나 그도 잠시, 큰아들은 장가를 들더니 집안을 돌보기는 커녕 며느리 치마폭에 쌓여 처가 말뚝에만 절하고 있다.큰아들 처가는 인근이 다 아는 부자이다. 노모는 그래도 큰아들 욕하는 식모딸과 탄광에서 병을 얻어 누워있는 작은 아들에게만 나무란다.언젠가 큰아들이 동생들을 거둘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옆 골방에서 나는 작은아들의 마른 기침소리가 노모의 귓가를 아프게 맴돈다.노모의 눈물에 어린 달빛이 밝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다. 12월 18일 박대통령 내외는 광산을 방문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나기 위한 자리였다.

박 대통령은 이들을 보자마자 울먹였다. 당시그 자리에 있었던 한 광부는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이게 무슨 고생입니까. 나라가 못살아 여러분들이 이국땅 지하 수천미터에서 이런 고생을 합니다.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여러분들의 새까만 얼굴을 보니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겨우 마음을 진정한 대통령은 당부했다.
“외교관이란 마음가짐으로 독일국민의 근면성을 배우고 한국에 돌아와 우리나라가 발전하는데 힘을 보태 주십시오. 지금은 못살아도 우리 후손들에겐 부강한 나라를 물려줍시다”
함께 애국가를 부르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대통령 내외와 광부들 모두 부둥켜 안고 울었다.

한참 경제개발계획 5개년계획을 세워 추진하던 박정희정부는 지금의 이명박대통령,  당시 고려대학교 학생회장을 비롯하여 한일외교정상화에 반대하던 6.3동지회 전원을 교도소에 수감하면서까지 한-일수교를 추진하였고, 이를 통해 일본정부로부터 받아낸 배상금으로 경제개발의 종자돈을 삼았다.저렴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찾고 있던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서 외환을 충당하였으나 이 돈만으로는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확보한 외환으로 경제개발계획을 수행해 나갔다.삼성, 현대,포항제철 등등 큰아들을 키워 나갔다.

그들은 절대 혼자 큰 것이 아니다. 그들의 공장기둥은 지하 1,000미터 막장에서 뜨겁게 타올랐던 우리 대한청년들의 땀방울과 누구도 접근하려고 하지 않았던 병자들 곁에서 고향의 노모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쳐야 했던 간호사 딸들의 한이 만들었다.그 공장의 지붕은 미국을 대신하여 이 곳 베트남에 파병되어 목숨걸고 베트콩과 치열하게 싸워서 번 달러로 올려 세웠다. 베트남전쟁에서 우리 한국군은 공식적으로 5,077명이 전사하였고 1만 922명이 부상당했다.

 

김성진 기자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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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호 2011-10-11 11:19:14
그래도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애쓰는 많은 기업들이 해외에서 수고하고 땀흘리는 줄 압니다. 계속 인내심과 열정을 가지고 베트남 사랑, 대한민국 사랑을 키워주시기 바랍니다. 계속 재미있는 소식 기다립니다. 박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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