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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병들어 죽고 나니 한국에 온 것이 정말 후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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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병들어 죽고 나니 한국에 온 것이 정말 후회된다"
  • 조해진 기자
  • 승인 2011.10.13 0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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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1] 직업성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 지난해 4월 부터 35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근로복지공단에 직업성 암 산재신청을 했으나 조사를 지연시켜 직업성 암에 걸린 노동자와 가족들이 이중 3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사진은 피해자 가족 박금자씨

[KNS뉴스통신=조해진 기자]지난 5일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이미경 의원은 국회에서 직업성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산업재해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4월 부터 35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근로복지공단에 직업성 암 산재신청을 했으나 조사를 지연시켜 직업성 암에 걸린 노동자와 가족들이 이중삼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피해 가족들 중 한 사람인 박금자(44)씨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귀화한 조선족이다.

그는 지난달 25일 동생 박승철(34)씨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야만 했다. 급성 혈액암을 앓던 동생의 9개월 투병 생활을 지켜봐온 박씨는 이제 지쳐서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박씨의 동생은 약 4년 전 부모님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다. 대학을 나온 동생은 중국에서 사무직과 같은 편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높게 받기 위해 누나인 박씨를 따라 한국행을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3년 전 인쇄회로기판을 제조하는 인천의 한 기업에 계약직으로 취업해 일을 다녔다.

박씨는 동생에 대해 “감기 한 번 앓아본 적 없고, 약도 먹어본 적 없는 아이였다. 그렇게 건강했는데 한 번은 힘들다고 얘기를 하더라. 그 때부터 병이 발병했던 것 같다"며 "9개월 전 복통 증상이 있어 병원을 찾았더니 급성 혈액암으로 진단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이어 “동생에게 발병한 증상은 특별 케이스라 골수 이식으로도 치료가 불확실한 상태였다. 병원의 무균실에서 격리 치료를 받았던 동생은 밥도 못 먹고 호흡 곤란 증세도 심하게 나타났다"며 "저항력이 떨어져 고열에 시달렸고 동맥주사로 약을 투여 받으면 약이 너무 독한 나머지 의식을 잃을 정도였다. 동생은 ‘마치 죽었다가 깨어난 느낌’이라고 고통을 호소했다”고 떠올리조차 싫은 동생의 투병 생활을 전했다.

박씨는 동생이 기력이 있을 때 구로 지역의 금속노조와 연결돼 문길주 금속노조보건국장을 만나게 된 것이 집단 산업 재해 신청을 하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화학약품을 매일 만지며 일을 했던 것이 병의 원인으로 생각돼 회사에 산업 재해 신청을 했으나 회사는 “우리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이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박씨는 “동생이 병을 얻어 사직서를 냈다. 투병 중에 회사 측에서는 병문안도 전화 인사 한 통도 없었다”며 일을 하던 중에 병을 얻은 동생에게 아무런 눈길조차 주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려하는 회사를 원망했다.

▲ 생전 건강했던 박승철씨의 모습.

동생의 병이 발병된 이후 박씨는 문 국장과 함께 동생이 다닌 직장을 찾았다. 그는 회사를 방문 하자 공장 주변의 공기가 화학약품 냄새로 가득했다고 했다. 동생이 고무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금속이 쓰이는 인쇄회로기판 제조 공정에 참여했지만, 박씨는 공장 주변 공기가 이미 화학약품으로 오염됐기 때문에 보호 장비가 소용없었을 것 같다고 공장 방문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들은 공장 내부를 확인하기 위해 들어가려고 했지만 회사 측에서 “공개할 수 없다”며 완강히 거부해 작업 환경을 확실히 볼 수 없었다고.

또한 회사의 관계자들이 모두 친인척으로 구성돼있는 점도 회사 측으로 부터 증거를 얻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일하던 노동자들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로 박씨의 동생과 달리 한 달 두 달 일하고 금새 그만뒀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연락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현재 증인을 서 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며 산업 재해 신청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한 동생의 장례 직후 “한국에서 살고 계신 부모님은 자식을 괜히 한국에 데리고 와 죽게 만들었다며 우울증 증상을 보이고 계신다”며 “이 전에는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이 병을 얻어 죽고나니 한국에 온 것이 정말 후회된다"고 말했다.

그는 22살된 아들도 한국에 데리고 올 예정이었지만 동생을 잃은 후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박씨는 “노동자들이 다시는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가슴이 아프다. 다른 사람들도 동생처럼 일을 다니면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해진 기자 sportjhj@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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