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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퐁파두르 부인과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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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퐁파두르 부인과 최순실
  • 이혜령 시인
  • 승인 2017.01.1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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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령 시인.

[KNS뉴스통신] 퐁파두르 부인은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정부로 무척 아름답고 교양이 풍부했으며, 국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 이름난 여인이다. 그당시 왕비의 측근까지도 내가 세상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말할 만큼 외모도 뛰어났지만, 그녀의 사려 깊은 마음씨와 예술적 교양, 다른 정부들과 차별되는 남다른 지성이 왕의 총애를 받기에 충분했다. 퐁파두르 부인은 그렇게 평생 왕의 최측근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미술사에서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는 한장르로 인정받을 만큼 빈번하게 그려졌고, 놀랍게도 그림을 주문한 이도 거의 대부분 그녀 자신이었다. 퐁파두르 부인은 예술이 지닌 신비스로운 힘을 알아차렸고, 왕으로 하여금 당대의 지적, 예술적 흐름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퐁파두르 부인이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 된 것은 미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재능과 교양, 품성이 탁월하게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퐁파두르 부인이 미술, 문학, 음악뿐 아니라 패션, 인테리어, 건축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식을 내보이고, 파리의 스타일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차분하게 쌓아온 교양의 힘 덕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동생을 예술장관으로 앞세워 콩코르드 광장과 궁전들의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당대의 걸작 예술품들도 적극적으로 구입했다.역사가 로코코 시대 프랑스 예술적 취향의 최대 형성자로 그녀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이다.

오스트리아의 여제였던 마리아 테레지아가 애지중지여겼던 자신의 딸 마리 앙투아네트를 루이 15세의 손자 루이 16세와 결혼시키면서, 무엇보다 파리의 스타일을 지배하라고 당부한 것은 퐁파두르 부인의 재능과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시에 모든 인류가 아담의 자손이라면, 모든 프랑스인은 루이 15세의 자손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소문난 바람둥이였던 왕을 사로잡은 사람은 퐁파두르 부인 한 사람이었고, 그녀를 대체할 사람은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았다.

이쯤에서 최순실을 이야기하고싶다. 여자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그녀가 예술적 소양이 탁월하고 교양이 풍부했다면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대기업에 압력을 행사해서 재단에 기부받은 돈일지라도 가난한 이웃 돕기와 더불어, 순수 열정으로만 삶을 불태우는 예술가들을 위해 썼다면, 분명 그녀의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퐁파두르 부인이 43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왕만큼이나 슬퍼하고 낙심한 사람이 프랑스의 예술가들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당시 그녀의 후원과 격려가 가장 큰 힘이었기 때문이다.

문화계 인사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비판적인 인사는 탄압하고, 선대의 우상화에 골몰하는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낯부끄러운 정부. 대통령이 선생이라 부를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기본적인 역사적 인식이나 예술적 소양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통령이나 정부가 그렇게 망가지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역사를 주도하는 사람 곁에 어떠한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그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퐁파두르 부인과 최순실을 비교해보면 그차이를 현저하게 느낄 수 있다.

이혜령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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