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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토리 지구별 여행] 40억 년의 추억속으로…'캄차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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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토리 지구별 여행] 40억 년의 추억속으로…'캄차카' (3)
  • KNS뉴스통신
  • 승인 2016.12.31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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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건재한 레닌 동상을 바라보다"

아바친스키 화산 위로 별이 쏟아지는 꿈을 꾸다가 눈을 떴다. 그러자 눈앞에 별이 왔다 갔다 한다. 어제 마신 보드카가 아직 머리를 짓누른다. 하지만 그렇게 머리가 지끈하던 간밤의 숙취가 잠시의 화산지대 트랙킹을 하면서 설원의 공기를 마시니 그야말로 한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도심에 찌들어 살면서 힘들게 하루를 버텨내야 했던 나는 다시 한 번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캄차카의 맑은 공기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산장에서 내려와 찾은 곳은 캄차트스키 시내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레닌광장이었다. 사실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많은 도시의 레닌 동상들이 무너져 내렸지만 이곳 페트로 파블로브스키 캄차트스키는 아직도 레닌 동상이 건재해 있었다. 아마도 이곳이 구 소련의 극동 군사전략 도시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카메라를 보고 반갑게 포즈를 취해 준 캄차카 아이들. 자세히 보니 쌍둥이였다.

그리고 비 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레닌 동상 앞에서 모델을 서 준 발랄하고 젊은 여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변해가는 러시아의 모습이 역사 속에서 다시 한 번 새롭게 떠올랐다가 담담하게 침전되기도 했다.

"빌리첸스키 화산을 바라보며 샤먼 춤을"

러시아에 오기 전에 미리 읽어 본 책 중 하나인 안나 레이드의 명저 '샤먼의 코트'는 신비감이 물씬 풍기는 제목과 달리 선홍빛 피와 잔인한 학살로 얼룩진 끔찍한 보고서다. 영국 출신의 젊은 사학자인 안나 레이드가 우랄 산맥부터 태평양 연안까지 '동토의 왕국' 시베리아를 순례하며 역사의 숨겨진 구석을 파헤쳤다.

안나 레이드의 '샤먼의 코트'

답사 결과는 꽤 충격적이다. 한민족의 기원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시베리아의 참혹한 과거가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하나하나 드러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거기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에서 시베리아 원주민의 존재를 떼어내는 것은 멕시코에서 마야의 존재를 떼어내는 것, 호주에서 예보리진을 분리하는 것, 미국에서 아파치 족을 지워버리는 것과 같다"

과거 시베리아에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30여 개 정도의 민족들이 살고 있었으며, 이들은 북미의 인디언, 호주의 애보리진과 마찬가지로 수천 년 동안 그곳에서 주인으로 살아왔다. 여기서 살았던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사방 모든 것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였고, 또 각각의 개성과 활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재미난 것은 '천둥은 천상의 아이들이 바다표범 가죽 위에서 뛰놀 때 나는 소음이며, 미동도 않는 북극성은 신령님들이 말을 매어 두기 위해 박아 놓은 말뚝'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를 보면 이들이 얼어붙은 대륙을 얼마나 활기 넘치는 세상으로 생각하고 만들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시베리아 원주민들에게 있어서 '살아 숨 쉬는 따뜻한 세상'을  가져다주는 이가 바로 '샤먼'이다. 다시 말해 만물이 살아 움직이는 세상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가 바로 샤 먼, 즉 모든 걸 아는 사람인 것이다.

이번 여행 중 운 좋게도 우리는 빌리첸스키 화산이 배경으로 펼쳐진 들판에서 러시아 소수민족인 시베리아 원주민들이 보여준 전통춤의식인 샤먼 공연을 촬영할 수 있었다. 캄차카에서 시베리아의 샤먼을 그것도 그들의 후손들이 펼치는 전통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인상적이고  뜻깊은 조우였다.

시베리아의 샤먼은 우리나라 신라시대의 역사와 연관성이 있을 만큼 동 아시아의 중요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날 공연에서 그들이 부르짖는 새의 소리, 북의 편차적인 울림 등은 질병을 몰아내고 악귀를  쫓는 데 사용하는 샤먼들의 주술이었다고 전해진다.

화려한 옷차림 또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코트에 달려있는 새 모양의 펜던트는 그를 날 수 있게 해 주고, 어깨에서 튀어나온 금속 뿔은 사슴의 날렵함을 안겨 주며, 뱀을 상징하는 길게 끌리는 가죽 끈은 좁다란 공간도 파고들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이 공연은 사실 끈질기게 살아남은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통치 아래서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수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들은 총살되거나 헬리콥터에서  내던져졌다.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런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라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들으면서 말이다. 이런 모든 박해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내 눈앞에 이렇게 전통문화의 형식으로 살아남아  다시금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이제는 삶의 한 방편으로서 이런 공연을 하겠지만 그 모습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에게는 좋은 체험의 현장이었으며 캄차카에서 색다른 경험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기도 했다.

"연해주의 중심, 블라디보스토크를 걷다"

다음날, 짧았지만 강렬했던 캄차카 반도의 추억을 뒤로 하고 블라디보스토크행 XF328편에 올랐다. 차창 아래로 4일간의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던 캄차카 반도의 웅장한 화산들이 머리를 들어 떠나는 이를 배웅해 주었다. 그리고 올 때는 들러보지 못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잠시 여정을 풀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출발하는 블라디보스톡 중앙역

블라디보스토크는 ‘쁘리모리예르’, 즉 연해주의 주도로 우리에겐 한민족 근대사의 애환을 담고 있는 역사적 장소인 동시에 크리미아 전쟁 당시 부동항이자 군항으로, 러시아 극동에서 태평양으로 뻗어가는 대 관문이자 전략요충지로, 러시아에서 그 존재감이 대단한 도시다. 이런 블라디보스토크의 역사적 배경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곳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TSR)가 출발하는 블라디보스토크 중앙역이다.

그날 이곳을 시작으로 영화 <태풍>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역 주변 철길을 따라 벨르이 돔이라 불리 우는 연해주 주정부 청사가 위치해 있는 전사의 광장. 그리고 서울의 대학로 같은 거리인 포키나 거리, 여름철 많은 시민들이 찾는다는 유명한 해변가 나베르즈나야 거리까지 블라디보스토크의 전형적인 명소를 걸으며 캄차카에서 담지 못한 사람들의 표정과 거리 풍경을 온전하게 담아내는 시간을 가졌다.

조국 러시아를 위해 목숨을 바친 무명용사의 묘지에 매일 시민들이 꽃을 가져다 놓는다.

쉽게 갈 수 없는 땅, 러시아. 유럽으로 통하는 가스밸브를 잠그면 유럽 전체가 먹통이 된다는 최대의 에너지 생산국이자 광활한 대지를 소유하고 있는 나라. 난 지금 그 동쪽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 와 있다. 그날 밤, 블라디보스토크의 현대 호텔 12층 라운지에서 바라 본 블라디보스토크의 야경 속에서 그 유명한 벨루가 보드카의 실키한 목 넘김을 경험하는 것은 말 그대로 환상적인 궁합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바다 건너 캄차카 반도에서 보았던 화산과 설원은 막막한 도시에서 뭔가를 애타게 갈구하던 나에게 삶의 힌트를 건네 준 멋진 커닝 페이퍼였다고 말이다. 그 커닝 페이퍼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다모토리(최승희)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있고, 진정한 이해란 경험 속에만 놓여있다" (러시아 속담) -끝- (by다모토리·jan 31.2016)

KNS뉴스통신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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