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안내자 최상희, 여행 에세이 '시코쿠를 걷는 여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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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안내자 최상희, 여행 에세이 '시코쿠를 걷는 여자' 출간
  • 한민재 기자
  • 승인 2016.12.1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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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S뉴스통신=한민재 기자]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면, 일본에는 시코쿠 순례길이 있다. 지난 2013년 외국인 여성 최초로 일본열도의 시코쿠 88개소 절의 공인 센다츠(순례길 안내자) 자격증을 받은 최상희 작가가 최근 여행 에세이 '시코쿠를 걷는 여자'(도서출판 푸른향기, 350쪽, 1만5000원)을 출간했다. 저자는 바다와 산을 끼고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1200km의 빼어난 길을 마음으로 담아내고 있다.

◆일본열도를 이루는 네 개의 주요 섬 중에서 가장 작은 섬 시코쿠에 1200km의 아름다운 길이 있다.

바다와 산을 끼고 88개의 사찰을 도는 1200년 된 길이 그것이다. 이 시코쿠 순례길을 최상희 작가는 여섯 번씩이나 걸어냈다. 최 작가는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운영하던 가게가 망했다.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빌려준 지인은 어느 날 사라졌고, 지극정성을 다했던 남자친구에게는 배신을 당했다. 연이은 불행으로 좋아하던 운동도 하지 않고, 허기진 마음을 음식으로 채우느라 체중은 고도비만에 가까워졌다. 우울증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자리 잡을 무렵 우연히 알게 된 시코쿠 순례길. 최 작가는 온몸으로 부딪혀보자는 심정으로 20kg의 배낭을 메고 45일 동안 걸었다. 이 순례여행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순례자에게 차나 음식, 잠자리까지 제공하는 시코쿠의 아름다운 전통, 오셋다이

진언종의 창시자인 코보대사의 발자취를 따라 돌던 불교 순례길이 요즘엔 일반인 여행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아름다운 길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코쿠에는 오헨로(순례자)들에게 베푸는 오셋다이(접대)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시코쿠를 걷는 여자' 최상희가 받은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비구니 스님으로부터 순례자 복장인 흰 옷을 선물받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과 음료, 숙소를 제공받기도 했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는 목욕 오셋다이를 받고, 차를 태워주는 사람도 만났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순례자를 보면 반드시 오셋다이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셨어. 그건 이 섬의 오랜 전통이야. 그러니 기쁘게 받아줬으면 좋겠어.”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천 엔을 건네며 했던 말이다.

◆동행이인,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시코쿠 순례길을 여섯 번씩이나 걸으며 길의 일부가 된 여자

길에서 만난 오헨로들은 동행이 되기도 하고, 숙소에 함께 머물기도 하며 우정을 나눈다. 길 위의 ‘동행이인(同行二人)’ 표식처럼 그 길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니었다. 차츰 그녀는 우울증이 치유되고, 긍정의 마음을 되찾아간다. 시코쿠 88개소 여섯 번, 시코쿠 번외사찰 20개소 네 번, 쇼도시마 88개소 한 번 결원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7년차 오헨로상 최상희는 순례길에서 만난 한국인과 외국인, 일본인에게까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정도로 순례의 달인이 되었다. 그녀는 걷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활동가로 변신했다. 도쿠시마의 오래된 옛길을 복원하는 작업과 고치현의 츠키야마진자 루트 순례표지판 설치작업에 참여했으며, 2013년에는 외국인 여성 최초로 공인센다츠(순례길안내자) 자격증을 받았다. 2014년에는 89개의 헨로코야(순례자쉼터) 프로젝트에 동참하여 한국, 일본, 영국의 기부금을 모아 70번 절과 71번 절 사이에 한일 우정의 헨로코야를 건설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 시코쿠신문, NHK 등을 통해 일본에서 더 잘 알려진 최상희는 국내에서도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시코쿠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돕고 있다.

◆저자는?

뭐든지 발을 내디뎌 보고 몸으로 부딪혀야 배우는 경험주의자. 옷깃을 스치듯 단 한번 만난 사람과도 시절인연을 믿는 인연주의자. 그러다 보니 매번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사람으로 인해 다시 위로받는 사람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야말로 위대한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으로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는 ‘사람책’을 좋아한다.

저자는 순례를 통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긍정적인 생각과 손톱만큼의 작은 희망이라도 그것을 믿고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순례자들은 이 길을 다 걷고 결원을 한 뒤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순례길에서의 경험을 통해 한 발 더 나아갈 힘을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이 여행기는 작가에게 풍경처럼 자리 잡은 소중한 순간의 인연들을 담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누군가에게 그 인연이 또 다시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누군가를 도우며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죽음이 순례길을 걷도록 이끌었지만, 지금은 풍요로운 마음을 나누기 위해 이 길을 걷는다. 88개 사찰을 도는 것만이 순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코쿠는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 인생이라는 길에 발을 딛고 걷게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발을 내딛고 있는 일상에서도 나의 순례는 계속되고 있다"

한민재 기자 sushin@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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