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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토리 포토에세이] 오이도 우중기행(雨中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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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토리 포토에세이] 오이도 우중기행(雨中紀行)
  • KNS뉴스통신
  • 승인 2016.10.23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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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카메라가 징징 운다

Leica M4 / 21mm F3.4 S.A / E100vs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초입을 알리는 잠깐의 비가 내렸다. 한동안 처박아 둔 수동 카메라를 가방에 쑤셔 넣고 어디를 갈까 헤매다가 오랜만에 오이도를 찾았다. 내가 살던 동해에서 비가 이렇게 추적스럽게 오면 마치 해일이 일어난 듯이 진하고 비릿한 바다 내음이 요동쳐 아무 일 없지만 그저 갯가로 뻘쭘하게 쭐래쭐래 마실을 나가 보던 일이 문득 생각이 났었는지도 모르겠다.

섬이 많은 서해안의 바다는 이런 날씨엔 어떨까 하는 생각에… 마침 일이 없는 날을 틈타 벼락같은 기습(?)을 감행했다. 오이도는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작은 내륙 섬이다. 원래는 육지에서 약 4㎞ 떨어져 있던 섬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갯벌을 염전으로 이용하면서부터 본토와 붙어지게 되었다.

이곳은 월곶포구와 소래 포구도 가깝고 밑으로 내려가면 자연생태 지역도 조성되어 있다. 소래지역은 많이 알려져 있고 나 역시 몇 번인가를 가본 적이 있지만 이제는 옛날 풍경은 사라지고 가득 찬 횟집과 오물들 때문에 별로 다시 가고 싶지 않았던 기억만 가득했었는데.. 그 많은 차들 하며 저녁이면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비틀거리는 사람들까지… 휴…그게 언제 때 기억인지…

정신없는 소래에 비해 오이도는 조용하고 평온한 포구이다. 소래처럼 많은 난전도 없고 거리에 옹기종기 조개구이 겸 바지락 칼국수 집이 모여 있을 뿐이다. 그 외곽길을 따라가다 보면 조그만 포구가 나오는데 평소엔 작은 이 오이도 포구는 문이 잠겨져 있다.

아직도 해안선에 군사 철책선이 남아있어 포구에 들어가려면 날을 잘 맞춰야 한다. 포구 주변에는 빙 둘러싸여 횟집들이 들어서 있는데… 긴 방조제가 해안을 가로막고 있어서 차를 타고 돌아보다 보면 건너편이 바다인지…육지인지 처음엔 잘 구분이 잘 안 갈 정도다.

다행히 포구로 돌아가는 입구에 큰 방파제 길이 나 있어 그곳이 포구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오이도 포구엔 작은 배들이 날을 잡아 고기를 잡아 올리고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엔 동해의 뻑적지근한 항구 분위기 정도는 되지 않지만 조그만 난전들이 자리를 잡고 관광객들에게 생선과 주꾸미 그리고 굴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대부도로 이어지는 긴 방죽길을 따라 안쪽에 형성된 오이도 포구에 그 날은 가늘게 비가 내렸다. 길게 갇힌 바다지만 그 내음은 동해와 다를 것이 없었다. 아침 일찍 바다로 나와 오후가 돼서야 생선을 잡아 올리는 어부들이나…출항을 하지 않는 어부들이 포구에 나와 배를 정비하는 모습들은 실상 물 만난 고기들을 만선으로 끌어올리는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잔잔한 바다의 일상을 객 없이 느끼기엔 오히려 더없이 좋았다.

방파제 위에 널브러진 노란 그물들과 각종 투망들…그리고 낡은 드럼통 위에 얹힌 재생 그물들까지. 바다의 일상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진득한 풍경은 멀리 떠날 수 없는 도심 사람들에게 바다의 일상성을 보여주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 날은 날이 흐려서 인지 고기잡이를 나간 배들이 많이 없었다. 하지만 궂은 날씨에도 이곳을 찾은 몇몇  사람들은 그나마 잡아 올린 주꾸미나 생선을 사려고 삼삼오오 모여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올라온 고깃배는 잡아 올린 생선을 집안 손님 접대를 해야 한다며, 팔지 않고 그냥 가져가는 바람에 애써 포구를 찾은 사람들은 그만 공치는 날이 되고 말았다.

허허…선장님, 그거 그냥 팔지요?

라며 선장을 따라가는 아저씨들의 아쉬운 웃음소리 뒤에 다시 가늘게 비가 흩뿌린다. 마치 연극이 끝난  무대 위로 떨어지는 검은 막처럼… 사람들은 순간 뿔뿔이 흩어지고 작은 포구는 징한 빗속에 또다시 외롭게 남는다.

오이도를 떠날 때는 제법 굵은 비가 내렸다. 뿌연 차창밖으로 보이는 조그만 포구… 비 오는 날의 오이도 풍경은 흡사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에서 보았던 조그만 에피소드의 무대 배경처럼 복제된 나를 남기고 후다닥 떠나는 또 다른 나를 보는 신비함마저  들었던 하루로 기억된다.

칙칙함과 외로움이 사라진 날… 너무 행복해서 미칠 것 같은 상쾌한 나날이 계속된다면 비오는 날 오이도를 찾아 잠시만이라도 앉아있어 보라. 그 칙칙함의 풍경이 얼마나 진득하고 좋은지… 차라리 외로움이 얼마나 인간적인지를 알게 될 터이니…ㅋㅋ (by다모토리·Sep17.2016)

다모토리(최승희)

KNS뉴스통신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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