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2:04 (토)
"왕으로의 길도 천년의 이름도 그녀의 눈물 앞에 얼마나 하찮은 것입니까?"
상태바
"왕으로의 길도 천년의 이름도 그녀의 눈물 앞에 얼마나 하찮은 것입니까?"
  • 박봉민 기자
  • 승인 2010.12.21 2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년의 꿈보다 푸른 사랑

지난해 숱한 화재를 남겼던 한편의 드라마가 세간의 관심이 된 적이 있었다. "선덕여왕"

많은 이야기와 기록이 있었고 또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드라마로써의 ‘선덕여왕’은 참으로 아름다웠고 그래서 슬펐다.
그 아름다운 슬픔의 중심에 비담이, 덕만을 향한 비담의 사랑이 있었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한다면, 적어도 사랑이라면 그와 같아야하지 않을까?

왠지 그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짠하다.
사랑을 위해 어머니까지 죽음으로 내몬 비정하면서도 지극히 순정적인 사내. 죽음의 순간에서 조차 오직 한 여인의 이름을 불렀던 그의 사랑에 마음까지 숙연해진다.

주는 사랑 vs 빼앗는 사랑 

‘선덕여왕’에서는 한 여인(덕만)을 두고 두 사내(비담과 김유신)가 연정을 품는다.

유신 “폐하를 위해 아낌없이 다 바치겠습니다.”
비담 “폐하를 위해 아낌없이 다 빼앗겠습니다.”

얼핏 보면 유신의 사랑이 참으로 우직해 보인다. 그리고 비담의 사랑은 지극히 이기적으로 보인다. 극 중에서 유신은 ‘주는 사랑’으로 비담은 ‘빼앗는 사랑’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유신의 사랑이 아낌없이 주는 우직한 사랑이고 비담의 사랑은 아낌없이 빼앗는 이기적인 사랑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유신의 사랑이야말로 지극히 계산적이고 위험을 감래 하지 않으려는, 그리고 자신의 것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가.
반면, 비담의 사랑은 바보스러울 만큼 우직하고 미련스러운 사랑이다. 그의 사랑에는 그녀를 내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욕심 외에는 어떠한 계산이나 욕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신은 덕만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고 했다. 하지만 유신이 그녀를 위해 포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복야회’ 사건이다. 유신은 그 일로 인해 덕만이 얼마나 곤경에 처할지를 알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기반인 그들을 포기하지 못한다.
반면, 비담은 덕만을 위해 자신의 어머니인 미실까지 죽음으로 내몬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오직 사랑을 위해 죽음으로 내몬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비담이 덕만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국을 위해 유신은 폐하를 둘로 나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아닙니다. 제게는 폐하가 곧 신국입니다.”

그렇다 . 유신에게는 신라가 곧 덕만이지만 비담에게는 덕만이 곧 신라이다.

“천년의 이름보다 그 꿈보다 더 푸른 것을 찾았습니다.” 

12월 8일 방송에서 이런 유신과 비담의 대사가 교차한다.

유신, “대 신국을 위하여...”
비담, “폐하와 폐하의 대 신국을 위하여...”

이것이 뭐가 다르냐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우선순위이다. 유신에게 1순위는 가야유민이다. 2순위는 신라, 3순위가 덕만이다.
하지만, 비담에게는 오직 덕만 뿐이다. 비담에게는 덕만을 제외한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권력도 오직 그녀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 비담에게는 목적일 수 없다.

“내가 신국이 될 것이다. 내가 신국이 되어 덕만, 너를 가질 것이다.”

집착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마음의 근본은 분명 사랑이다.

어머니인 미실의 사당에서 비담은 이런 말을 한다.

“어머니, 나라를 얻어 사람을 가지려 하는 것을 걱정하셨죠. 또 사랑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라 하셨죠.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 합니다. 뺏는 것이 아니라 주워서, 얻는 것이 아니라 버려서 함께 하려 합니다. 왕으로의 길도 천년의 이름도 그녀의 눈물 앞에 얼마나 하찮은 것입니까?”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천년의 이름보다 그 꿈보다 더 푸른 것을 찾았습니다.”

그렇다. 비담에게 사랑은, 덕만은 그런 존재이다. 모든 것에 우선하는 그런 존재.

비담에겐 목숨보다 권력보다 덕만이, 그녀를 향한 사랑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담은 덕만을 위해 덕만의 사후 속세를 떠나겠다는 약속을 하고 맹약서를 쓴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폐하가 없는 세상이라면 이 신국도 상관없는 제가 권력이 무엇이며 조정이 다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신국이 되어 너를 가질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너무 간절히 바라고 원했기 때문일까?

덕만을 향한 지독한 사랑은 비담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초조함은 의심을 낳았고 결국 둘의 사랑을 파국으로 이끌었다.

“언제 버려질까 두려웠겠지. 폐하는 널 끝까지 믿었어. 믿지 못한 것도 너, 흔들린 것도 너, 연모를 망친 것도 비담, 바로 너야.”

염종의 말처럼 마지막 순간 둘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은 비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긋남의 시작 역시 사랑이었다.

“왕의 자리가 저를 버릴만큼 그리도 버거운 것이라면 그 짐을 제가 내려 드리지요.”

비담의 반란은 왕위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왕이라는 너무도 무거운 짐을 짊어진 그녀를 편안케 하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덕만은 끝끝내 그런 비담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아니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우연이 겹쳐진 것이 필연이고 필연이 겹쳐 역사가 된다.”

그것도 아니라면 덕만은 비담을 너무 믿었던 것일까?

“왕위를 선위하고 비담과 조용히 지내려한 것이 제 마지막 꿈이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전해야할 말이 있는데 전하지 못한 사람이 있어. 그 말을 전하러 갈 것이야.”

비담의 사랑은 참으로 푸르고 맑았다.

“미실의 목적으로 태어났고 문노의 목적으로 길러졌다. 대업은 너희의 목적 아닌가.”

비담에게 사랑 아닌 다른 목적은 없었다. 그의 모든 것은 오직 덕만을 향한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죽음조차도 그를 막지는 못했다. 마지막 순간 그가 향한 곳은 사랑하는 그녀였다.

“전해야할 말이 있는데 전하지 못한 사람이 있어. 그 말을 전하러 갈 것이야.”

그가 끝끝내 전하지 못한 말은 무엇일까?

“덕만아! 덕만아!” 

수 많은 병사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앞둔 때 그가 향한 그 곳은 사랑하는 덕만이었다.

“덕만까지 70보...”
“덕만까지 30보...”
“덕만까지 10보...”

결국 그는 그녀를 목전에 두고 마지막 말을 전하지 못한 채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는 눈을 감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며 죽는다.

그의 마지막 순간,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덕만아! 덕만아!”였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이름, 너무도 그리운 그 이름 ‘덕만’...

덕만 “이젠 아무도 내 이름을 부를 수 없다.”
비담 “제가 불러 드릴 것이옵니다.”
덕만 “내 이름을 부르는건 반역이다. 네가 연모로 내 이름을 불러도 세상은 반역이라 할 것이다.”

부르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는 사랑. 어쩌면 처음부터 그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마도 그 누구보다 비담 자신이 그런 운명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지만 운명을 거슬러서라도 이루고자 했던 사랑. 그것이 덕만을 향한 비담의 사랑이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지독한 그 사랑을 놓지 못했다.

이 얼마나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인가. 그의 사랑은 왜 이리도 슬프도록 아름다운 것일까?

“여리고 여린 사람의 마음으로 너무도 푸른 꿈을 꾸는구나.” 

비담의 사랑을 두고 미실은 이런 말을 했었다.

“여리고 여린 사람의 마음으로 너무도 푸른 꿈을 꾸는구나.”

그런 존재가 또 있다. 설원과 세종이 바로 그들이다.

미실을 지극히 사랑한 두 남자. 언젠가 세종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사내도 아니야. 어찌 사내에게 왕위에 대한 욕심보다 세주를 갖겠다는 마음이 더 클 수가 있어.”

이에 설원이 말한다.

“그것이 더 불가능한 꿈이었으니까요.”

그랬다. 그들에게 미실은 권력욕 보다 강렬한 욕망이었고 꿈이었다.

욕망보다 강한 꿈.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특히, 설원은 미실의 마지막 당부를 지켜주기 위해 병든 몸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아간다.
그리고 죽는다. 죽는 순간까지 그는 미실의 마지막 당부를 비담에게 전한다.
그는 온전히 미실의 사람이었다. 권력이나 의리가 아닌 그녀를 향한 사랑이 온전히 그를 미실의 사람이게 한 것이다.

세상은 그들을 일러 악인(惡人)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당신은 그들만큼 누군가를 처절하게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그들만큼 푸른 꿈을 꾸어본 적이 있는가.

사랑한다면, 적어도 사랑이라면 그쯤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기에 앞서 온전히 그 사람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그래서 때로는 무모할지 몰라도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할 수 있는, 오직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사랑만을 욕심내는 그런 사랑.

평생에 그런 사랑 한번쯤 받아본다면,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정말 행복하고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헌데, 요즘 과연 그런 사랑이 존재할까? 혹여 정말 이룰 수 없는 꿈은 아닐까?

본 칼럼의 내용은 '(주)KNS통신'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봉민 기자 kns@kns.tv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섹션별 최신기사
HOT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