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7:51 (금)
이름도 모르는 ' 아가' 에게
상태바
이름도 모르는 ' 아가' 에게
  • 민경관 논설위원
  • 승인 2011.09.14 15: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래도 부모는 따스한 품 이란다

'아가'라고 하면 '아기'라고 부를때 보다 더 정이 드는 것 같아 '아가'라고 부르는 내 속성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다정 다감 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그런 정이 있기는 하다고 생각 하며 살아 온 것 뿐이다.
 
 명절 뒤끝의 황량함 같은 것을 씻기엔 운동이 제격이라 하고 동네 주변을 어슬렁 거리거나 자전거를 타곤 하는데, 연휴 마지막 날에는 반바지 차림으로 호수 주위를  뛰었다. 뛰었다기 보다는 속보라는 것이 더 맞는 말 이겠지만....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며 나름의 생각에 혼자서 흐뭇함을 느끼려는데, 어떤 야릇한 표정의 '아가'를 보았습니다. 멈추어서 더 확실한 것을 보려 하는데 엄마와 아빠가 애를 업어 주려고 하는 모습에 '아가'는 좀 난감해(?) 하는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야! 아빠 등이 넓고 좋아 업어 ' 라고 엄마는 재촉하고 있고 아빠는 앉아 자기 등을 제공하여 양손을 뒤로 뻐치면서 업힐것을 권유 합니다. 그러나 아이는업힐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왜 아이는 엄마가 그토록 좋다는 아빠의 등에 업히지 않은가?' 고민이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을 근접에서 지켜 본다는 것이 내 생태로는 할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요.

 해서 보나 마나 빤 하다는 제 생각만으로 결론 아닌 결론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궁금하는것 이 풀리않는데 왜 그럴까요. '자칫 나만의 생각만으로 그것이 진짜로 행해지는 사실로 사실화 되어 버리면 어쩌지!' 하는 무책임성 때문에 그럴거란 생각 이지만 나만의 결론으로 생각해 버리자는 좀 뻔뻔 한 생각으로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아이의 생각과 엄마와  의견이 일치한 아빠의 행동에 대해서 말입니다.

 엄마가 생각하는 아빠의 넓은 등. 

엄마는 아빠의 등을 잘 압니다. 뒤에서 껴 앉았거나 앞에서 보듬었거나 아빠의 등이 믿음직 스럽고 아마도 이등이 나를 등지지 않으면 나를 맡겨도 좋다는 결론에서 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세상 어디에 내 놔도 이런 등짝 판은 없슴니다. 엄마 말대로 제가 보기에도 참 넓은 등짝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아가는 업히려 하지를 않는지 어떻게 생각해야 내가 편해 질까 궁금해 지는것을 여러분은 이해가 안되십니까?

 이렇습니다. 엄마는 엄마의  경험에서 나온 미덥고 넓은 힘이 있는 등짝임에 틀림 없습니다만 아가가 보는 아빠의 등짝은 넓어서 싫은 거에요.  넓으니 아가가 잡을데가 없습니다. 손에 뭐가 잡혀야 불안 하지 않는데 그 넓은 등짝은 아가 가 안전하게 잡을 손잡이가 없습니다. 자칫 아빠의 어깨를 잡았다 하더라도 고사리 손으로 억센 어깨를 쥐고 버틸수가 없는거지요. 그런데도 엄마와 아빠는 넓은 등짝을 제공하면서 업히라고만 하고 있으니 아가는 난감 할수 밖에 없는 거지요.

 이렇게 상황을 정리 하고 돌아온 나는 훌륭한 해석과 관찰력에 얼마나 흐뭇하고 멋지다고 생각 했겠습니까 .이게 잘난 나의 ,나만의 훌륭한 분석이라고...  나만의 경험과 생각으로 내가 낳은 자식에게 베풀어 주는 엄마의 생각이 거룩 할는지는 모르겠으나 아가의 불안으로 갈수 있다는 생각이 그냥 지나치기엔 좀 그렇지 않나요.
 지금  그렇더라도 엄마 품에서 자고 있거나 뭐를 달라고 칭얼대며 아빠의 출근 길을 방해 할것 이 틀림 없습니다. 좋은 착한 제안이었다는 것을 아가가 먼저 알기때문입니다.
 
 이렇게 정리한 저도 쉬겠습니다 . 알량한 글을 꾸미느라 힘이 들었으니까요.  참고로 아가는 잘 걷지 못하는 나이로 보였으며 엄마의 등짝은 왜소해 보였습니다.

민경관 논설위원 mkk1711@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섹션별 최신기사
HOT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