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0:31 (금)
‘짝퉁’ 특산품 유감
상태바
‘짝퉁’ 특산품 유감
  • 정건작 논설위원
  • 승인 2011.09.09 13: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정건작 남서울대학교 교수
우리가 지방여행을 가게 되면 그 지역에서 소문난 토속음식을 먹어보거나 지역특산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된다. 그 특산물들은 한결같이 개성 있고 정성이 가득해서 옛날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맛과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정겨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그들의 생산과정은 본래적으로 산업사회에서 규격화되어 대량 생산하는 물건과 달리 맞춤형 소량 생산인 것이 대부분이다. 거기에는 대대로 전수받은 지식과 기술과 장인정신과 문화까지 깃들여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일전에, 어느 친지가 먹거리 문화가 발달한 남쪽지방에 출장을 가서 그 지역에서 꽤 유명한 음식을 시켜 먹었는데, 그 맛과 가격이 옛날과 같지 않았고, 오히려 그 점포의 서울분점 음식이 더 입맛에 맞더라고 푸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지역특산품이란 물건들도 하나같이 인건비가 싼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에서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생산된 저급 상품들이 판을 치고, 우리 국산제품은 가격이 비싸 구입할 엄두를 못냈다는 말도 함께 첨언 하였다.

이와 같이 과거에 소문났던 유명토속 음식들의 맛이 변하고 지역특산품의 질이 떨어지는 연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궁극적으로 비용과 같은 경제적인 효율성 때문이라고 쉽게 설명할 수 도 있겠으나, 나름대로 곰곰이 다음 몇 가지 연유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 그 지역 토속음식점의 경우, 유명하다는 음식점의 주방장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즉, 30~40여년 대대로 내려온 안방마님 할머니의 한결같은 손맛이 뒷방으로 퇴장하고, 그 아들 며느리나 딸 또는 인척이 어깨너머로 전수받아 식당을 대신 운영하는 경우라면, 그 음식 맛은 여지없이 예전과 같지 않다.. 지역특산품 또한 같은 이치다.

둘째, 옛날 할머니 주방장이 조리에 사용하는 기본 조미료들- 소금, 간장, 된장, 고추장부터 깨, 참기름, 고춧가루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각종 소채류 등 이 모든 식재료들은 공장에서 다량으로 손쉽게 생산한 것이 아니고 손수 경작하거나 주위의 신토불이 산물을 구입하여 지지고 볶고 삶고 햇볕에 말리고 오랜 기간 숙성하는 과정을 거쳐 만든 정성과 혼이 깃든 제품인 데 반해, 요즈음 젊은 주방장이 사용하는 식재료들은 인스탄트 공장형생산물(Factory Farm)이거나 원산지도 국내외로 헷갈리는 대도시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구득한 물품일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어찌 기본이 다른데 맛이 같으랴?...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도 우리자신의 입 맛이 변했다는 사실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미화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해, 가난한 농촌에서는 ‘보릿고개’에 고구마나 감자같은 구황식물로 끼니를 연명했던 ‘60년대초 부터 산업화를 거쳐 소득 2만불 시대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생활문화가 서구화 되면서 식생활의 양상도 많이 달라 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한 가정 안에서 조차 세대 간의 식사취향도 각각이어서 한 가족이 외식이라도 할 량이면 의견일치를 보기 어렵게 된 상황이 됐다. 그래서 이곳저곳의 다른 음식들을 모은 퓨전음식이란 게 성행하여 모두을 만족시키고 있으니, 이렇듯 어려웠을 때 먹었던 음식 맛과 잘 살게 되어 먹는 음식 맛이 똑같을리 없다는 점 등등이 예전과 음식 맛이 달라진 주된 사유라고 정리 할 수 있겠다.

상황이 이러할 진데, 맛이 변질된 토속 음식이나 질이 떨어진 물품들은 옛날의 후광을 업고 지역 명물로 행세하면서 아직도 잘 버티고 있다. 뜨네기 고객이라도 유치할 양으로...
이상의 사례는 대대로 전수되어 지켜야 할 우리의 전통문물과 가치들이 돈과 효율 그리고 편익이란 미명으로 쉽게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조명코자 하는 의도였다.

위와같이 생태적 구조로 보아, 그 산물의 생산과 제조에 다소 시간이 걸리고, 정성과 노하우가 필요하고, 심지어는 장인정신까지 요구되는 소위 지역 특산품(음식과 물산을 포함)이란 제품들이 요즈음 추석 특수를 타고 값비싼 명품선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각 가정이나 개개인이 명절에 차례에 쓰거나 웃어른, 주위의 친지들에 대한 선물까지를 이들 지역 특산물로 소비한다면, 그 수요는 실로 엄청난 물량일 텐데, 그 공급물량은 달리지도 않고 무진장이다...좋게 말해서 미리 수요를 예견하고 오랫동안 정성스레 많이 만들어 저장했거나, 아니면 시간제약상 시쳇말로 ‘짝퉁’특산품일 확률이 아주 높다고 볼 수 있다.

그 증좌는 매번 언론매체 의 소비자고발 프로들이 굴비나 한우, 그리고 김 등 지역특산품의 적나라한 문제점을 폭로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 재론하고 싶지는 않다. 한마디만 덧붙이면, 가짜‘짝퉁’ 특산물을 제조 판매하는 자들이 양심을 속이고 돈의 노예로 전락하여 짧게 살 것 인지, 아니면 선조대의 명예와 자긍심을 지켜 길게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할 것 인지를 택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후자를 오래도록 지켜 보존해 나가야 한다.
 

정건작 논설위원 kunjak@hira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섹션별 최신기사
HOT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