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0:57 (금)
[칼럼] 하나의 중국
상태바
[칼럼] 하나의 중국
  • 강병환 논설위원
  • 승인 2016.05.09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강병환 논설위원(정치학 박사).

[강병환 논설위원] 양안관계(대만-중국)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하나의 중국’이다. 이것만 해결되면 마치 대나무를 가를 때 윗부분만 가르면 아래는 칼날 따라 쉽게 갈라지듯이, 양안간의 통일 혹은 독립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현재 양안간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바로 이 ‘하나의 중국’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중국’ 은 무엇인가. 그 본질은 양안은 모두 ‘하나의 중국’에 속한다는 것이다. 1949년 이래 양안은 ‘하나의 중국’문제에 관한 논의를 하였으나, ‘하나의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이라는 각자의 입장을 견지하여 해결되지 못하다가 1992년에 와서 ‘해결되지 않은 해결’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92공식’(92共識, consensus)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 소련의 붕괴, 1989년 천안문 사태의 여파로 인한 중국의 고립, 대만의 경제력 향상으로 인한 자신감과 여기에 더하여 1992년 한중수교의 영향 등으로 반관반민단체인 양안 양회(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와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는 1992년 홍콩에서 마주 앉았다.

이 회담에서 ‘하나의 중국’문제에 관한 협상이 있었는데, 결국 서로가 자신들의 입장만 고집하다가 결렬되었다. 그러나 협상단이 귀국한 후에도 전화와 팩스와 서신의 방식으로 쌍방은 ‘하나의 중국’문제에 관한 의견을 지속적으로 교환했다. 최종적으로 대만 해협교류기금회가 제출한 표술방안 즉 “양안은 각자가 구두방식으로 ‘하나의 중국원칙’을 견지한다”는 것과 여기에 더해 “해협양안은 공동으로 국가통일의 도모하는 과정중에 쌍방은 ‘하나의 중국원칙’을 견지하나 ‘하나의 중국’의 함의와 인지에 대해서는 각기 서로 다르다”는 부건을 덧붙였는데, 여기에 대해 중공측은 팩스로서 ‘귀측(대만측)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으로 답장을 보내, ‘하나의 중국’에 대한 의제는 애매모호한 결말로 끝났다.

애매모호한 만큼 ‘92공식’은 모호성에 기초한 공통된 인식으로서 해석의 각도에 따라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장점과 더불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의 해석이 가능한 단점이 이미 노정되어 있었다.

국민당은 ‘92공식’의 핵심내용과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에 대해서 각자 해석하는 것(一個中國,各自表述)과 쟁의성 있는 이견에 대해서는 잠시 보류해 준다는 각치쟁의(擱置爭議) 정신이다. 국민당은 ‘하나의 중국’에 대해서 각자 표술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었다.

그러나 국민당이 말하는 ‘중국’이란 의미 속에는 신해혁명으로 성립한 1912년의 중화민국이 곧 ‘하나의 중국’이라는 함의가 담겨져 있다. 중국공산당의 입장은 “해협양안이 각자가 구두방식으로 모두 ‘하나의 중국원칙’을 견지한다”는 것으로 ‘하나의 중국원칙’에 방점을 두었다. 중공측의 ‘하나의 중국 원칙’이란 의미속에는 국제법상 유일합법으로 인정받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으로 해석하는 함의가 담겨 있다.

민진당의 입장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입장을 통째로 부정해 버린다. ‘92공식’은 정식적인 문서로서 서명한 것이 아닐뿐더러, ‘92공식’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92공식’은 국공양당이 사적으로 형성된 공통된 인식일 뿐이며, 이는 전체대만의 의견을 대표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민주절차로서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 이 ‘92공식’은 당시에는 잠복해 있다가 2000년도에 접어들어서 국민당, 민진당, 공산당간의 핵심적 논쟁의 쟁점이 되었다. 당시 국민당은 민진당과의 정권교체를 보름 남겨둔 시점에서, 행정원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이었던 쑤치(蘇起)가 ‘92공식’이라는 단어를 창조해 냈다. 이는 민진당 집권시에 양안관계발전의 저해를 우려했던 쑤치가 ‘대못을 박는’형식으로 만들어 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공산당 역시 줄곧 ‘92공식’을 부정하다가 2005년 롄짠(連戰)의 베이징 방문에서 후진타오와(胡錦濤)주석과 롄짠은 ‘92공식’의 기초아래에서 양안협상을 회복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이를 계승한 마잉주(馬英九)는 2008년 집권과 더불어 양안간의 급속한 대화와 교류를 진행시켜 지금까지 양안은 23개의 협의를 체결했다. 이는 모두 국공양당이 ‘92공식’의 틀 아래에서 이뤄낸 것들이다.

올해 총통으로 당선된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은 아직까지 ‘92공식’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 총통경선시에도 차이잉원은 양안간의 ‘현상유지’라는 말로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사실상 민진당은 ‘92공식’을 부정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공산당과의 관계에서 긴장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

최근들어 중국의 국무원대만사무판공실은 지속적으로 “양안관계의 받침돌은 ‘92공식’에 있다”고 밝혀, 차잉잉원의 ‘92공식’에 대한 입장변화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더군다나 양안관계의 핵심변수인 미국 역시 아시아 재균형정책(rebalancing policy)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18억 3000만 달러 규모의 무기를 대만에 판매하기로 결정했고, 올 4월 미국 하원에서 ‘대만관계법’과 1982년 레이건 정부 시 대만에 대해 승낙한 ‘6항보증’을 미국과 대만 관계의 중요한 지주(支柱)로 삼는 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서 향후 중국, 미국, 대만의 삼각관계는 더욱더 복잡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양안관계 역시 협력의 요소보다 갈등과 긴장의 요소가 더 강해질 것이다. 아직까지 ‘92공식’을 인정하지 않는 민진당은 국민당의 집권 때 보다 양안관계는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나, 어느 정도로 나빠질 것인지는 민진당의 입장에 달려 있다.

현재 양안관계발전을 잴 수 있는 온도계는 ‘92공식’이다. 오는 5월 20일은 대만총통의 취임식이 있는 날이다. 취임연설에서 차이잉원은 ‘92공식’에 대해 과연 어떠한 입장을 밝힐지가 사뭇 주목된다.

강병환 논설위원 sonamoo369@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섹션별 최신기사
HOT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