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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스와질란드 최초 의과대학 설립자, 현대판 리빙스턴 김종양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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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스와질란드 최초 의과대학 설립자, 현대판 리빙스턴 김종양 선교사
  • 이미소 기자
  • 승인 2014.12.05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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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설립을 위한 특별 중보 기도회 개최, 브라이스 목사를 통해 선교사로 방향 전환, 김 선교사 “후원 성도들에게 감사”
▲ 서울 성북구 소재 목양교회에서 간증하는 김종양 선교사 <사진=오형국 기자>

[KNS뉴스통신=이미소/문형봉 기자] 지난 10월21일 목양교회(서울 성북구 소재)에서 김종양 선교사의 아프리카 대륙선교회(ACM : Africa Continent Mission)의 주관으로 ‘스와질란드기독대학 및 부설 대학병원설립을 위한 특별 중보 기도회’가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아프리카 선교사업을 후원해준 한국 기독교인들이 모인 행사로, 김 선교사와 한국 기독교인들의 뜨거운 기도로 진행됐다.

그는 스와질란드 최초의 의과대학인 스와지기독의과대학(SCU)을 설립한 주인공이며 아프리카 현지 사람들로부터는 일찌감치 제2의 리빙스턴으로 불리고 있다.

김 선교사는 KNS뉴스통신과의 현장 인터뷰에서, “현재까지 중남부 아프리카에 560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153개의 교회를 건축했다”고 밝혔다.

또한 현실 생활에 필요한 실제적인 교육 중심과 체계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5개국에 8개의 초·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최근 스와질란드에 스와지기독의과대학을 설립하기까지 그가 걸어온 선교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난 1976년 김 선교사는 엔지니어의 꿈을 키우고자 독일로 갔지만, 미국인 선교사 브라이스 목사를 통해 선교사역에 눈 돌려 영국 웨일스 신학교에 입학해 선교사의 삶을 걷기로 결심한다.

김 선교사는 신학교 졸업 후 아프리카의 말라위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했지만, 파송 후원단체로부터 3개월 동안 선교활동비를 받지 못하고 맨 땅에 헤딩 식의 선교활동을 하게 됐다.

그 뿐 아니라 스와질란드에서는 의과대학 설립과정 중 현지 정부의 약속 불이행으로 약속된 운영비 지원이 취소될 어려움에 처했으며, 스와질란드 현지 국영방송에서 어린이 피로 성찬을 한다는 허위 보도에 경악하기도 했다.

필자는 김 선교사의 독일 생활부터 스와질란드 선교 사역까지 드라마 같은 그의 삶을 들여다봤다.

▲ 김종양 선교사가 ‘새롭게 하소서’ 방송 촬영 후 MC들과 <사진제공=김종양 선교사>

아프리카 대륙선교회 김종양 선교사의 드라마 - 1부
- 기술자의 꿈 키워 독일로, 미국인 브라이스 목사를 통해 선교사로 방향 전환

김 선교사는 지난 1976년 독일어 학원에서 만난 브라이스목사로부터 “신학공부 해서 선교사가 되세요. 세상에 전문 엔지니어는 얼마든지 있지만 선교사는 부족합니다.”라고 취약한 선교실태를 들었다. 당시 김 선교사는 최고의 기술을 배워 성공한 사업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독일에서 연수교육을 받는 중이었다.

종교와 무관했던 김 선교사는 한국병원선교회 소속 파독 간호사들의 전도로 처음 복음을 접했다. 김 선교사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한국병원선교회 수련회에 참석한 뒤 삶의 전환점을 찾아, 병원선교회 사역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브라이스목사는 김 선교사의 헌신과 열정을 보고 선교사 될 것을 권유했다. 이후 김 선교사는 독일 신학교에 진학, 아프리카를 선교지로 정하고 영국 웨일스 신학교에 입학했다.

김 선교사는 영국 웨일스 신학교를 졸업하고, 기독교하나님의 성회 세계선교회와 병원선교회의 파송 받아 지난 1985년 11월에 선교지인 말라위로 떠났다.

아프리카 대륙선교회 김종양 선교사의 드라마 - 2부
- 말라위에서 첫 선교활동 시작, 병원선교회 회계담당 실수로 3개월 동안 선교비 못 받아

김 선교사는 말라위 선교활동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해프닝처럼 주신 시련을 경험했다.
김 선교사는 말라위 선교활동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나도록 선교활동비를 받지 못해 빈민촌의 원주민 집사 가정에 머물게 됐는데 집사 가정에서 원주민가족과 함께 기거하는데 많은 불편함이 있었다.

원주민 집사의 집에는 밤마다 모기 때가 달려들었고 바퀴벌레와 도마뱀이 온 방을 기어 다녔으며 음악 마니아들이었던 말라위 사람들은 깊은 밤에도 카세트를 고음으로 틀어대 김 선교사는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말라위의 음식문화는 한국의 음식문화와는 다르게 손으로 밥을 먹는 음식문화다. 김 선교사는 항상 손을 씻고 밥을 먹었다. 하지만,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여럿이 모두 손을 씻는 습관으로 때로는 다른 사람이 먼저 씻은 물에 손을 씻어야 한다. 그래서 이미 물이 더러워졌어도 그 물에 씻은 손으로 밥을 먹어야만 했다.

김 선교사는 한 집에 살면서 자신의 심경을 알았던 원주민 집사의 위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처음 깨달았고, 병자와 가난한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선교활동에 전심을 다했다. 김 선교사는 복음과 기도를 통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는 말라위 사람들이 치료받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역사 속에도 김 선교사는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물질이 부족했으며 몸은 점차 허약해지는 가운데 체력적인 한계를 경험하게 됐다. 김 선교사는 생활비가 없어서 더 이상 선교 활동을 이어갈 수 없는 극심한 궁핍 가운데서 하나님께 선전포고 하듯 부르짖었다.

“이제 얼마 후면 제가 이곳에 온 지 100일이 됩니다. 만일 100일 안에 약속된 선교비를 보내주시면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아프리카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그러나 100일이 지나도 선교비를 보내주시지 않으시면 저는 말라위를 떠나겠습니다. 만일 제가 아프리카를 떠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또한 저에게도 큰 수치가 될 것입니다.”

김 선교사는 말라위 선교생활 99일째가 되는 날에도 사서함을 확인해봤으나, 선교활동비는 고사하고 편지 한 장도 들어있지 않았다. 결국 김 선교사는 100일째 되는 아침에 오늘도 우편함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면 아프리카를 떠나겠다고 다짐하면서 사서함을 열어봤다.

그런데 바로 김 선교사가 떠나던 날 독일병원선교회에서 보내 온 500달러 수표가 한 장 들어 있었다. 김 선교사는 자신의 수표가 아닌 잘못 보내진 수표라 생각하며 우체국 직원에게 문의했다. 하지만 우체국 직원은 김 선교사 앞으로 보내온 수표 두 장이 더 있다며 500달러 수표 2장을 건네줬다.

상황을 알아보니, 병원선교회 회계담당자에게 사서함 번호가 잘못 전달됐고 독일에서 보낸 선교비가 3개월간 다른 사서함으로 보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해프닝으로 같은 상황에서 김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련과 환경이 모두 그 분의 세밀한 계획안에 있음을 믿고 감사하며 더 열심히 선교 활동에 전념했다.

김 선교사는 말라위에서 아프리카 대륙선교회를 창설했고 원주민 목사와 함께 섬기던 60여명이 모이던 작은 원주민교회는 2년 만에 4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으며 말라위의 여러 지방에 30여 교회를 개척했다.

▲ 스와질란드 스와지기독의과대학 설립 협약서에 서명하는 문교부장관 <사진제공=김종양 선교사>

아프리카 대륙선교회 김종양 선교사의 드라마 - 3부
- 스와질란드에 스와지의과대학(SCU) 설립 추진 중 현지 정부 뒤통수

지난 1987년 김 선교사는 말라위에서 2년의 사역을 마친 후 체류 연장을 하는 중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남아공화국의 스탱가 지역에 독일계 남아공인 백인선교사가 운영하는 선교센터에 머물게 됐다. 그 과정에서 그는 스와질란드를 방문하게 됐고 그곳에서 가메제 목사님을 만나게 됐으며, 가메제 목사님에게서 복음과 교육만이 아프리카를 살릴 수 있다고 하는 조언을 듣게 됐다.
김 선교사는 기도와 고민 끝에 스와질란드에서 선교 사역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스와질란드 인구가 120만 명인데 그 중 약 40%인 48만 명 정도가 에이즈 환자며, 평균 수명은 약 32.6세(2000년도 통계 자료 기준)로 비교적 단명하면서도 에이즈 발병률이 최고 수준인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김 선교사는 스와질란드에 에이즈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아 에이즈 질병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김 선교사는 먼저 복음 전파와 교육에 초점을 두고, 몇 교회의 후원으로 모잠비크에 지난 2002년 대조제일기독초등학교, 2005년 창대기독초등학교, 2009년에 소망 기독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각 교실과 강당은 후원자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거나 기념현판을 제작·설치해, 현지 학생들에게 아프리카 복음전파에 헌신한 설립후원자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013년에는 스와질란드에 최초로 스와지기독의과대학을 공동설립자들과 함께 설립했으며, 에이즈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와질란드는 지역 전체에 의사가 200명뿐이고, 그나마 외국에서 온 의사들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외국 의과대학에 국비장학생으로 유학을 가는 실정이었는데 의과대학을 졸업해 의사가 된 스와지 학생들 가운데 본국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김 선교사는 현지 정부와 의대 설립 협약을 맺어, 정부로부터 대학 부지와 운영비를 제공 받고 선교회에서 건물을 건축하며 대학교를 운영하기로 했다. 그러나 얼마 후 현지 정부가 설립 계약서에 ‘운영비를 지원하겠다’는 부분을 삭제했다. 그런데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과대학을 운영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실정이 된다.

김 선교사는 국회의원과 신문기자들을 초청해, 현지 정부에게 의과대학 설립 지원비 촉구를 위한 설명회를 개최했다. 국회의원과 기자들은 설명회에 참석 후, 다음날 언론사에서 스와지기독의과대학 설립 중요성을 보도했다. 국회에서는 교육부 장관을 불러 운영비 지원 문구를 다시 삽입해 재 협약하라고 지시,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2013년 교육부 예산을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압력을 넣었다.

마침내 현지 정부는 협약서에 ‘앞으로 5년간 매년 운영비와 장학금을 스와지기독의과대학에 지원하며 5개의 국립병원을 의대 실습병원으로 사용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 스와질란드에서 스와지 왕과 함께 <사진제공=김종양 선교사>

아프리카 대륙선교회 김종양 선교사의 드라마 - 4부
- 현지 국영방송 “한국 선교사가 어린이 피로 성찬식” vs 김 선교사 “사실 아냐”

지난 1994년 김 선교사는 스와질란드의 수도 음바바네 근처 마활랄라 지역에 교회를 개척했다. 마활랄라 라는 어원의 뜻은 ‘어둠’이라는 뜻으로 무당이나 도둑, 깡패들이 모여 살고 있는 위험한 지역이다.

김 선교사는 어느 주일 예배 후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한 청년 성도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선교사님, 큰일 났습니다. 스와질란드의 국영방송 저녁뉴스에 ‘한국에서 온 김 선교사가 마활랄라 지역에 통나무 껍질로 교회를 세워놓고 예배를 드리면서 주일날 성찬식에 어린아이를 죽여서 그 피를 성찬예식의 포도주 대신 사용한다’는 보도가 났습니다. 주민들이 교회당을 불태우라고 소리 지르고 있어요.”

김 선교사는 한 청년의 연락을 받고 놀랐고, 다음날 아침 신문에 ‘어린아이의 피로 성찬식을 하는 한국에서 온 선교사’라는 제목의 톱기사 보도를 보게 됐다.
교회 청년들은 “김 선교사님에 대한 방송과 신문 보도는 모두 다 허위다. 오히려 술주정뱅이에 날마다 싸움질만 일삼던 깡패였던 우리가 김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여 새 사람이 됐다. 당신들이 누명을 씌우려 하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행위”라며 강력 항의했다.

나중에서야 마활랄라의 한 이단종파 회장이 김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가 날마다 성장하는 것을 보고 누명을 씌운 것을 확인했다.

그 후 신문사가 정정 보도를 냈고,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방적인 보도를 내보낸 아나운서는 파면됐다고 김 선교사는 전했다.

김 선교사는 이단 종파의 누명에 가슴 아픈 것이 아니라, 허위보도로 인해 잘못된 보도인줄 알면서도 교회를 떠난 교인들로 인하여 가슴이 아팠다고 심경을 밝혔다.

김종양 선교사의 드라마 - 5부
- 김종양 선교사 “질병 때문에 괴로와”

김 선교사는 선교활동을 하는 동안 경제적 어려움으로 항상 빈민촌에 거주했다. 이로 인해 그는 빈민촌에 거주하면서 생긴 폐병과 풍토병으로 고생해야만 했다.

이 뿐 아니라, 김 선교사는 한국의 문화와 아프리카 빈민촌 문화가 현저히 달라 문화적 차이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김 선교사는 하나님의 선교 사업을 통해 얻게 된 하나님의 축복된 선물이라고 감사히 받아 모든 질병과 빈곤, 문화적 차이를 극복했다.

▲ 스와질란드 최초 병원인 스와지기독의과대학 조감도 <자료제공=김종양 선교사>

스와질란드 최초 스와지기독의과대학(SCU) 설립 배경
- 에이즈 질병 확산 방지와 건강한 스와질란드 문화 앞장

김 선교사는 스와질란드에 선교 활동하는 동안 때로는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에이즈로 사망한 스와질란드 사람들의 장례식을 치루기도 했는데 그는 그들의 슬픔에 애도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스와질란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라는 사명을 주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를 계기로 김 선교사는 한국의 공동설립자들과 함께 스와질란드 최초의 의과대학인 스와지기독의과대학(SCU)의 설립을 시작하게 됐고 또한 그는 에이즈 환자들의 집합소인 스와질란드 지역에 에이즈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와 대책을 마련 중이다.

아프리카 대륙선교 비전
- 김 선교사 “스와질란드 아이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자” 교육 절실

김 선교사는 스와질란드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절심함을 느꼈다. 김 선교사는 스와질란드 아이들에게 빵을 먹여 주는 것보다는 빵을 만들어 먹는 방법을, 고기를 잡아 먹여주기보다는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생활에 필요한 실제적인 교육 중심과 체계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한국의 공동설립자들과 함께 5개국에 8개의 초·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그 후 김 선교사는 현재까지 중남부 아프리카에 560개의 교회를 현지인 동역자들과 함께 개척했고, 150여 개의 교회와 병원, 고아원, 유치원, 선교농장, 기도원 신학교, 교육관, 강당, 초중고등학교, 종합대학교, 등을 한국의 공동 설립자들의 기도와 물질로 설립·건축했다. 그 외에도 우물 파주기, 한국과 남아공화국에 유학생들을 보내 학업을 후원하고 있다.

기쁨과 희망의 ‘스와질란드기독대학 및 부설 대학병원설립을 위한 특별 기도 중보회’
- 김 선교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 감사”

김 선교사는 2,000명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개인이나 단체 이름으로 아프리카 선교 사업에 후원·동참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협력후원자로 보내주신 2,000명의 한국 기독교인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스와질란드 선교 사업을 하게 되어 ‘스와질란드기독대학 및 부설 대학병원설립을 위한 특별 기도 중보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전했다.

김 선교사는 말라위를 시작으로 모잠비크와 남아공화국, 콩고, 잠비아, 케냐 그리고 스와질란드까지 아프리카 일곱 나라의 선교현장에서의 고난을 경험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또한 김 선교사는 이번 기도회를 통해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아프리카 선교사업의 진행 상황과 비전을 알렸다. 아울러 건축 현장의 모습을 투명성 있게 보여줘 선교사역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 김 선교사는 앞으로 아프리카에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할 기회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며 학교 설립 지원 사업에 동참을 바랬다. 김 선교사와 아프리카 대륙비전(ACM)은 선한사마리아인으로 아프리카 복음전파사역과 교육, 구제 의료사역에 동참할 동역자들을 찾고 있다. 매월 1만원을 지원하여 교회와 학교, 병원을 공동으로 여러 후원자들과 함께 설립할 수 있다.

개인이나 단체에서 교회나 학교, 병원을 건축할 경우 후원한 개인이나 가족, 단체의 이름으로 위의 기관들을 설립할 수 있으며 원하면 운영에도 동참할 수 있다.

아프리카 대륙비전은 중남부 아프리카 5개국에 신학대학교외 기독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설립했다. 설립에 헌신하신 분들의 명단은 아래와 같다.

스와질란드 은툰자 기독초등학교, 사임기독교등학교, 정은자교육관, 이순자권사가족기념강당, 성실고아원
스와질란드 기독 의과대학교 강의실과 실험실에 헌신하신 분들은 아래와 같다.

성원교회 유인식집사가족 강의실, 최복규 한국중앙교회 원로목사가족 강의실, 대조제일교회 빈소영권사가족 강의실, 순복음교회 손수진장로가족 강의실, 일산한소망교회 신춘식집사가족 강의실, 성실교회 성실실험실, 성문교회 강종수장로가족 실험실, 최원철목사, 이국현목사, 김종익박사, 이응진장로 공동실험실, 정우덕권사 강의실, 경기중앙교회 강의실, 평혼교회 홍현기목사가족 강의실 배선자 권사연합회 강의실, 여의도순복음교회 장호국장로가족 강의실, 권오성목사 인천큰빛교회 강의실, 미금제일교회 윤도중목사가족 강의실, 여의도순복음교회 박장근장로가족 강의실, 흥남복음교회 강의실, 순복음교회 김만환장로가족 강의실 평강한의원 김홍룡원장가족 강의실, 성모안과병원 장용익원장가족 강의실, 목동교회 이원우목사가족 강의실, 이보호목사 목양교회 강의실, 모잠비크 대조제일 기독초등학교, 창대 기독초등학교, 소망 기독중·고등학교, 큰사랑 성경학교, 콩고에 성원 기독초·중학교, 성원성경학교, 말라위 마탠대 고아 초·중학교, 남아공화국 임마누엘 신학대학교, 임마누엘 기도원

설립을 도우신 개인후원자나 교회의 이름을 명명하여 7000여 명의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김 선교사와 아프리카 대륙비전은 남부아프리카 모잠비크에 종합대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100만평의 대학교 부지를 받아놓고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적은 물질로 많은 선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곳이다. 이 선한 사업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분들은 아프리카 대륙선교회가 27년간 펼쳐온 복음전파, 교육, 의료, 구제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주시도록 초청한다.

아프리카 대륙비젼 (ACM)의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는 실행이사의 명단은 아래와 같다.

한국: 이영근이사장, 김효곤, 김용전, 김금호, 김한수, 김동태, 김영복, 김상민, 김만환, 김재분, 김경순, 김홍룡, 김선주, 김금곤, 구근철, 권규상, 노귀영, 민찬기, 박장근, 박기성, 박경선, 박귀자, 손수진, 신필수, 신춘식, 심재식, 이국현, 이원우, 이헌, 이은협, 임정빈, 임점술, 오재민, 오우전, 오명남, 오경자, 윤도중, 육수복, 전유성, 정우덕, 장용익, 장호국, 지병문, 주분옥, 최수근, 최경영, 홍현기, 홍영준, 홍순안, 홍주관, 황일상, 황찬규, 허순덕
미국: 김학수, 김미자, 공혜숙, 박정자, 박순덕, 이화진, 이이선, 이현선, 이연일, 우효진, 우호자, 윤영실, 윤복자, 최미자, 최병진, 차명선, 하상숙, 한영자, 황영순, 허규행, 브라이스쉬리카
독일: 김근철, 김익진, 박정자, 이창배, 유재형, 조항만
영국: 폴버클란드, 랄프브로크만
스페인: 최원철

이미소 기자 yimiso777@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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