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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진품명품] 표현에도 격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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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진품명품] 표현에도 격조가 있다
  • 조성진 편집국장
  • 승인 2014.11.12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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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안이라도 표현방식에 따라 격조의 깊이도 달라
초이스 안목-근성-문장력은 기자의 필수요건
말(talk)-대화(conversation)-의미 통하기(communication)의 3요소도 중요

[KNS뉴스통신=조성진 편집국장] 좋은 기사나 칼럼은, 그것이 비록 공격적인 내용의 접근과 문장 구조임에도 격이 있어야 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소스가 ‘밸류’가 매우 높은 것이라도 풀어나가는 방식이 지나치게 가볍고 감정적 표현에만 그친다면 결코 좋은 기사가 될 수 없다. 문장 하나로 소비욕구를 끌어올려야 하는 카피라이트는 그래서 더욱 어렵다.

명품보석 브랜드 ‘티파니’의 광고 문구는 “기념해야 할 순간에 함께합니다(There are times to celebrate)”이다. 극히 단순하지만 주얼리로서 티파니의 가치와 정체성을 잘 담았다. 거대 항공사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카피는 딱 한 줄이다. “Something special in the air”, 하늘에서의 특별함.  

세계 최대 언론사 중 하나인 CNN의 광고 카피는 “Be the first to know(가장 빨리 정보를 접하세요)”다. 일종의 ‘브레이킹뉴스’, 다시 말해 아침에 눈뜨자마자 처음 뉴스를 접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CNN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Covering the world like nobody can”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다. 직역하면 “우리만큼 전 세계의 뉴스를 전해주지 못한다”라는 의미로 오만하기까지한 문구지만 24시간 가장 빠르게 현장보도에 모든 걸 바치는 CNN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하다. CNN은 이 슬로건대로 9‧11사태때 화염에 휩싸인 쌍둥이 빌딩을 처음 보도했고, 그 외 세계적인 특종을 줄줄이 뽑아냈다.

롤렉스 시계의 모토는 “Live for greatness. When is greatness achieved?... Maybe it's when you're always asking yourself 'What's next?”다. “위대함을 위해 살다. (그러면)언제 위대함이 달성되나? 다음엔 또 무엇에 도전할까? 라고 항상 자문하게 되는 때일 것”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구대로 롤렉스는 탐험가(익스플로러), 다이버(서브마리너‧시드웰러), 과학자‧의사(밀가우스) 등등 끊임없이 도전하며 성취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을 위한 특화된 모델들을 선보여 왔다.

같은 사안이더라도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격조의 깊이도 다르다.
1) 요새 가난한 사람들은 뻔뻔해지고 억지스러워졌다.
2) 요즘 보이는 것은 가난의 권리화 현상이다.
1)이 일반적인 문장 구조라면 2)는 문장 잘 다듬기로 유명한 소설가 이문열 식의 이지적인 스타일이다.

헤밍웨이의 격조는 세익스피어만큼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샘솟는 어휘력+쉼표의 놀라운 테크닉의 유희가 아니라, 어휘가 거의 없는 듯 담담하고 간결한 단문이 놀랍도록 깔끔하게 나열된다는 데에 있다. 너무 꾸미질 않다보니 문체가 차가울 만큼 감정주입을 하지 않는 듯 보여 ‘하드보일드’라 일컬어질 정도였다.

기자는 ‘記者’, 즉 어떤 사안을 기록‧보도하는 사람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쌍방 주장을 들어보고 어디까지가 진위인지를 검증한 후에 글이라는 기호를 통해 보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자에겐 말(talk)-대화(conversation)-의미 통하기(communication)의 3요소가 동물적 감각을 능가할 만큼 잘 갖춰져야 한다. 그리고 말과 대화에서 생길 수 있는 오해의 소지, 즉 표면영역(Front regions)과 이면영역(Back regions)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두리뭉실하기 이를 데 없어 어떤 의미인지 애매한 정치인들의 어투야말로 표면영역과 이면영역을 파악하는 고도의 스킬이 요구되는 대표적인 예다.

방송국 기자와 일간지 기자의 보도방식은 다르다. 전자가 잘 다듬어진 ‘멘트’로 보도하는 반면 후자는 간결하게 잘 짜여진 문장으로 전달한다. 따라서 일간지 기자에겐 ‘펜’이 방송 기자에겐 마이크가 곧 무기다. 이걸 얼마만큼 잘 다루느냐에 따라 매체인으로서의 내공 수준도 가늠할 수 있다. 일간지 기자의 경우 그가 쓰는 기사가 곧 기자의 품질이고 상품가치이기도 한 것이다. 교열부(또는 편집기자)가 있긴 하지만 이곳에선 송고된 기사의 헤드카피 그리고 띄어쓰기나 오타, 어색한 문장을 아주 약간 다듬어 주는 정도다. 해당 기자가 엉망으로 써온 기사를 교열부가 모두 뜯어고쳐 주는 곳은 없다. 기자 채용 시 ‘논술’ 작성에 적지 않은 비중을 두는 것도 이런 이유다.

첫째-기사화해도 좋은 내용인지의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초이스’ 안목, 둘째-막힘없이 취재력을 발휘하는 전투적 근성, 셋째-기사로 정연하게 풀어내는 ‘문장력’, 이 세 가지는 ‘펜’으로 먹고사는 일간지 기자의 필수요건이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지방의 작은 스포츠 신문기자로 출발해 세계 최고의 신문 ‘뉴욕타임즈’ 편집국장까지 오른 제임스 레스턴이나 ‘타임’의 명 칼럼니스트 랜스 모로의 사례는 위 세 가지 필수요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기자/저널리스트의 모범 답안이다.

표현에도 격조가 있다면 기자의 격조는 펜에서 나온다. 펜을 부리는 역량이 모든 걸 말해주므로.
기자로서 지금 내 펜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와 있나 자문해보자.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라면 주저치 말고 채찍을 가해 분발해야 할 것이다. 자신에 대해 가혹한 만큼 결과의 달콤함에 취할 수 있는 기간도 그만큼 많아지는 법이다.

조성진 편집국장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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