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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더하기] 지금은 문화혁명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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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더하기] 지금은 문화혁명의 시대
  • 김필용 논설위원
  • 승인 2011.03.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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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행정 소프트파워 시스템 구축 절실

 
한 나라와 민족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닌 문화의 힘이다.

문화란 몇 년이나 몇 세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몇 백, 몇 천 년을 가꾸어 오며 형성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형성된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으며 민족과 국가가 지속되는 한 영원불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과거에는 물리적 전쟁 못지않게 정복지의 문화를 말살하고 자신의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 중요한 전략 중 하나였다. 이것은 오늘 날에도 유효하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을 통해 현대 사회 분쟁의 대부분은 결국 문명 간의 갈등이라고 했다.

결국 문화와 문명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된 민족관이 현대 사회를 주도하는 지배적 원칙인 것이다. 이것은 문화를 지배하는 자가 곧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원리인 것이다. 그래서 문화의 전파와 형성은 '소리 없는 전쟁'으로 불리며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또한, 오늘날의 문화는 곧 경제적 가치로 귀결되기도 한다. 영국의 여류작가인 조앤 롤링이 쓴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가 관련 산업에서 얻은 총 매출액이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이나 자동차산업의 수출 총액보다 훨씬 많다. 단순 비교만으로도 해리포터 매출액이 반도체나 자동차의 수출 총액을 앞지르고 있지만 이 대비는 총액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로 문화적 영향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중요한 소득인 것이다. 자신의 아이에게 들려주기 위해 지은 이야기가 책과 영화로 만들어져 전 세계인에게 영향을 미치며 엄청난 경제적 효과는 물론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오디세이’나 중국의 ‘삼국지’, 영국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이야기꺼리 들이 세계 문화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주목해 봐야만 할 대목이다. 우리에게도 그들에 못지않은 이야기꺼리들이 있다.

그리스의 오디세이 보다 스팩타클한 ‘바리데기’와 중국의 삼국지보다 위대한 역사의 기록이며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영국의 ‘로미오와 줄리엣’ 보다 로맨틱한 ‘춘향전’은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문화적 영향력으로 키우고 문화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비관적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말한 조앤 롤링이 과연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토록 엄청난 작품을 창작해 낼 수 있었을까? 미국이 낳은 위대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우리나라에서라면 과연 어땠을까?

우리나라에도 분명 그들 못지않은, 아니 그들보다 뛰어난 예술가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 못지않은 위대한 문화예술품들을 창작해 내고 있다. 하지만, 그 가치에 비해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창작자들 보다 유통자들이 더 많은 돈을 버는 현실과 저작권에 대한 인식의 부재가 예술가들의 창작 의지를 꺾고 있는 현실이 애석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한 젊은 영화감독의 죽음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투영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예술 명문학교를 졸업해 많은 국제 영화제에서 관심을 받으며 수상했던 한 젊은 영화감독이 ‘아사(餓死)’했다는 이야기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적이 있다. 후일 ‘아사(餓死)’와 ‘병사(病死)’ 사이에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어느 쪽이 사실이든 그 영화감독의 죽음은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현실이 얼마나 황폐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아까운 죽음이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는가. 최고의 명문을 졸업한 수재가 그토록 이른 나이에 그토록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면 이 땅의 소외된 이들의 처지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한 달 수입 30만원 남짓으로 본업보다 아르바이트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하는 대학로의 가난한 연극쟁이들, 진로를 고민하며 결국 아끼던 악기를 팔아야하는 음악가들, 부러진 화가의 붓. 이 모두가 누구의 책임이겠는가. 아니 누구의 책임을 떠나 우리가 얼마나 엄청난 손해를 자초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볼 때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문화정책은 존재하고 지원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초예술이 아닌 엘리트 예술, 이른바 당장 돈이 되는‘예술’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뿌리가 되고 근간이 되는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문화예술분야 뿐만 아니라 과학이나 체육 등의 분야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초가 탄탄해야 그 위의 나무와 열매가 튼실하고 오래도록 지속되는 법이다. 따라서 기초를 탄탄히 하는 문화예술행정이 구현되는 소프트파워 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문제는 기초에 대한 중요성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수많은 문화적 잠재력과 저력을 가지고도 저평가 받는 문화산업의 불모지로 여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기초를 중시하고 창의력을 개발하는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한다. 또한 문화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유통 및 디지털 기술 등 각종 지원 체제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는 지금 문명의 충돌 속에서 문화혁명의 소용돌이를 겪어내고 있다. 18세기는 산업혁명의 시대이고 20세기는 정보혁명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문화혁명시대이다. ‘누가 더 많은 문화적 자원을 확보해 이를 산업적이고 예술적으로 가공해 내느냐’에 따라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가 달려 있는 것이다.
 

김필용 논설위원 kfee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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