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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부의 ‘일필휘지’] 잠자는 조합원을 깨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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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부의 ‘일필휘지’] 잠자는 조합원을 깨울 때다
  • 최양부 편집고문
  • 승인 2014.09.1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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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나쁜 협동조합’ 활개
조합원 스스로 정체성 회복 앞장서야
대의원·이감사, 조합장 잘 뽑아야

농축산인과 수산인, 임업인 이라면 한번쯤은 자신들이 조합원으로 있는 농·축·수협과 산림조합이 과연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진정한’ 협동조합인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행정기관인지, 금융기관인지,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단체인지, 필요한 농림축수산자재를 값싸게 사게 해주고, 생산한 농림축수산물을 제때 제값 받게 해주는 경제사업체인지 모르겠다면 무엇이 협동조합이고 바른 협동조합인지, 그리고 자신들은 협동조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솔직히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협동조합의 주인이란 사실을 알고 있으며, 주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도 자문해 봐야 한다. 만일 지금까지 이런 문제들에 생각해 본적이 없는 조합원이라면 아마도 그는 ‘잠자는 조합원’이거나 아니면 그때 그때 자기 편리한대로 조합을 이용만 하는 ‘기회주의적 조합원’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조합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조합일수록 ‘주인 없는 조합’이 되고 조합장과 이감사와 임직원들이 서로 ‘통’하기만 하면 조합과 조합원을 그들의 ‘밥’으로 만들고 ‘종’으로 부리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농협제자리찾기운동을 시작한 2007년 이후 지난 6년 간 틈틈이 협동조합다운 협동조합을 찾아 농·축·수협과 산림조합의 현장을 둘러보면서 얻은 결론 중의 하나는 많은 수의 협동조합들이 사실은 조합원보다는 조합장과 임직원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나쁜 협동조합’이란 사실이다.

협동조합이 이렇게 된 것은 4년마다 조합장을 뽑는 선거 말고는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잠들어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자는 조합원을 깨우기 위한 노력을 하는 조합도 별로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조합원이 잠들어 있어야 조합운영하기 편하다’는 것이 많은 조합장과 임직원들의 지배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조합마다 조합원을 속이는 분식회계가 관행이 되다 시피하고 비리가 끊이지 않아 농·축·수협과 산림조합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지만 우이독경이란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잠자는 조합원을 깨우기 위해 그들에게 협동조합다운 협동조합은 어떠한 협동조합인가를 알려주는 곳도 거의 없는 현실이었다.

1844년 영국에서 ‘로치데일 공정 선구자 협동조합’이 성공적으로 출범한 이후 지난 170년 동안 협동조합은 전 세계로 확산됐고 국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했다. 이 때문에 협동조합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무엇이 진정한 협동조합인가에 대한 논의가 그치지 않았다.

1895년에 창립한 세계협동조합연맹은 창립 100주년이 되는 1995년이 돼서야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의 모든 협동조합과 협동(조합)인이 공유해야 할 협동조합에 대한 정의를 채택, 발표했다. 세계연맹은 “협동조합 정체성에 관한 성명서”에서 ‘협동조합이란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요구)와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자치조직이며, 자신들의 필요와 열망을 달성하기 위해 설립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통제 관리)하는 경제사업체’라고 규정했다. 다시 말하면 협동조합은 첫째, 생각과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자치조직이며 그들의 결사체이고, 둘째, 그들은 공통으로 가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요구의 우선적인 충족과 지역사회발전 등과 같이 사람들의 삶의 질의 향상과 자기계발과 같은 높은 열망의 실현을 추구하며, 셋째, 이를 실천하는 수단으로 자신들이 힘을 모아 설립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며 이용하는 경제사업체라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소유주이고 이용자이며 운영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협동조합은 조합원에 의한,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의 단체이며 사업체다. 그래서 협동조합의 주인을 조합원이라고 한다. 다만 운영과 관련해서 모든 조합원이 다 운영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조합원을 대리(표)하는 대의원을 뽑고, 대의원들은 조합운영을 책임지는 소수의 이감사를 뽑아 그들에게 조합운영을 맡기고 있다. 그리고 전문성 확보를 위해 외부로부터 전문가를 영입하고 직원을 채용해 조합경영을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대의원회와 이사회 그리고 전문 경영진이 삼각구도를 이루며 이들이 모두 조합원과 조합의 이익증진을 위해 일하도록 상호 감시와 견제가 이뤄지도록 짜여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7년 농협법이 제정시행에 들어가면서 정부주도로 농협이 조직되기 시작했으며, 그 후 축협과 수협, 산림조합이 행정단위별로 만들어졌다. 1960~70년대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협동조합은 정책사업을 추진하는 수단으로 활용됐고 농어민과 임업인들은 강제적으로 조합에 가입했다. 심지어 정부가 조합장을 임명하기도 했다.

1987년 민주시대를 맞이하면서 조합원에 의한 조합장 직선이 이뤄지게 됐고 민선조합장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선거민주화는 이뤄졌지만 조합을 조합원중심으로 운영하는 조직민주화는 이뤄지지 못했다. 그래서 독재시대의 조합장과 임직원 중심의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조합운영이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 농축수협과 산림조합도 세계연맹이 정한 정의에 따라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바로 잡을 때가 됐다. 조합의 조직과 운영을 조합원중심으로 혁신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누가 대신 해 주는 일이 아니다. 조합원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합원들이 잠에서 깨어나 자신들을 대신해서 조합을 혁신할 대의원과 이감사, 조합장을 똑바로 뽑아야 한다. 지금은 잠자는 조합원을 깨우는 일이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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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부 편집고문은 미주리대 농경제학 박사, 대한민국 농업통상대사, 아르헨티나 대사, 대통령 수석비서관(농수산) 역임.

최양부 편집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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