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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부의 ‘일필휘지’] 농협, 세월호와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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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부의 ‘일필휘지’] 농협, 세월호와 무엇이 다른가?
  • 최양부 편집고문
  • 승인 2014.07.2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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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혈세 5조원을 각종 금융사업 설립에만 쏟아부어
농협이 잘못되면 우리 농민과 농촌도 같이 침몰
정부-정치권-업계와 농협 간 유착 고리 깨는 총체적 개조 필요

“한국민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윤리적,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바란다.”
지난달 2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참사로 애통해 하는 한국민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수 많은 젊은 생명의 희생이 매우 안타깝다”며 전해온 말이다.

국제해사포럼 참석차 지난 4월 23일 우리나라를 방문한 마퀴밀리 유럽해사안전청장은 “선장과 선원들이 보여준 행동은 배에 사고가 났을 때 그들이 수행해야 할 의무인 시맨십(seamanship)을 저버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했다. 배에 사고가 나면 선장과 선원들은 마지막까지 승객의 안전한 탈출을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하는 데 어린 학생들에게 침몰하는 배의 선실에서 나오지 말도록 방송해놓고 자신들만 탈출한 것은 살인에 준하는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세월호는 승객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안위만을 챙긴 선장과 선원들의 비열한 행동은 우리 사회에 만연된 직업윤리의 마비와 도덕적 타락, 무책임, 무제한의 이기적 이익추구의 끝판을 보여주었다.
사건 발생 후 정부와 단체들 간의 혼선은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두서없는 엉망진창’의 나라인가를 만 천하에 보여주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번 사건이 정부와 산하단체, 업계 간 구조화된 먹이사슬과 부정부패로 얼룩진 ‘관료마피아’가 만들어 낸 예고된 참사였다는 사실이다.

세월호는 대한민국이 국민을 위한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 국민을 앞세워 자신들의 철밥통을 지키는 관료와 정치인과 기업인 등 기득권자들의 나라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세월호 참사는 2014년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세월호와 선장과 선원들이 셀 수도 없이 우리사회 곳곳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망치고 있다. 농협도 그런 곳들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세월호는 2008년 4월 23일 농협중앙회 지식경영아카데미의 초청으로 농협중앙회에서 가졌던 6년 전의 특강을 생각나게 한다. 2007년 11월 ‘농협제자리찾기국민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며 농협에서 특강을 부탁했다. 나는 “글로벌 개방시대, 기로에 선 한국농협: 농협의 정체성 위기와 제자리 찾기”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했다. 그 때 나는 농협을 빙산과 충돌 침몰한 영국의 초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와 비유했다. 지금 생각하니 타이타닉호보다는 세월호가 더 적합한 비유가 아닌가 싶다. 타이타닉호의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을 한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최선을 다한 뒤 배와 함께 바다에 수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특강요지를 생각나는 대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오늘의 농협은 마치 우리 농업과 농민을 싣고 글로벌 개방시대의 태풍이 휘몰아치는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거대한 항공모함과 같다. 이 항공모함이 운항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순간의 실수로 침몰한 타이타닉호가 떠오른다.

조그마한 빙산을 피하지 못해 충돌한 타이타닉호의 이야기는 농협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는 농협이란 거대한 항공모함의 안전운항을 책임지고 있는 (농협중앙회장을 비롯한 전국의 조합장들과) 임직원들은 조합원과 외부전문가,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 모든 정보를 공유하면서 미리미리 필요한 항로수정을 해나가야만 한다.

농협이 잘못되면 우리 농업과 농민과 농촌도 같이 침몰할 수밖에 없다. 농협은 격변하고 있는 국내외 환경을 직시하고 정확히 읽어야 한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농촌에서 조합원 자원이 고갈되어가고 있는 현실과 함께 FTA 등으로 확대일로를 걷고 있는 글로벌 개방으로 무너지는 농업경제와 대형유통업체들의 지배가 날로 커가고 있는 현실에서 농협의 책임은 막중하다. 백척간두 벼랑 끝에 선 우리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구하기 위해 농협은 협동조합 본래의 정신에 따라 조합원의 눈높이에 맞춘 조합으로 거듭나야 하고, 조합원이 갈망하는 유통판매사업 활성화를 위해 농축산물의 생산에서 판매까지를 책임지는 ‘판매(마케팅)협동조합’으로 변신을 서둘러야 한다.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 뉴질랜드 등의 강소농국가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선진농업국의 농협들처럼 우리 농협도 품목별로 전문화된 경제권 또는 전국단위의 신세대 마케팅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등 현재와 같이 난립된 도시, 농촌, 품목 농협에 대한 일대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그리고 임직원 중심의 농협을 조합원 중심으로 개조하는 일대 변혁을 일으켜야 한다.

2011년 정부는 ‘판매농협구현’을 위해 신경분리를 하겠다며 농협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농협은 이를 기화로 정부로부터 국민의 혈세를 5조원이나 받아내 NH농협금융지주, NH농협은행, NH농협생명, NH농협손해보험회사를 설립하고, 고액연봉을 받는 고위 임직원 자리를 수없이 만들어 자신들을 위한 승진파티와 돈 잔치를 벌렸다. 농협중앙회장과 조합장, 간부임원들, 그리고 노조를 앞세운 임직원들은 하나같이 FTA 등으로 무한경쟁의 바다에 빠진 우리 농업인을 구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고액연봉을 챙기기 위한 돈 장사에 빠져있다. 그들은 과연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과 무엇이 다른가?

교황의 말처럼 농협은 윤리적으로,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과 업계와 농협 간에 구축된 유착의 고리를 깨뜨리는 총체적인 농협개조가 필요한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협을 장악하고 있는 ‘협대마피아’ 중심의 인사시스템부터 혁파해야한다. 특히 농업인은 내팽개치고 자신들의 이익추구에 앞장선 부도덕한 농협임직원들을 비호하는 정부와 국회 내의 ‘농협마피아’부터 추방해야 한다. 유통정책이나 축산정책 등 정책 사업을 무책임하게 농협에 대행시키고 농협의 뒤를 봐주는 식의 정부의 낡은 농정추진방식도 혁파해야 한다. 농어민을 위한 ‘농수산신용보증기금’의 농협사금고화도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와 농협간의 오래된 관행인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장관, 국회의원, 시도지사와 시장군수, 지방의회의원들의 ‘농협눈치보기’도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세월호참사가 남긴 큰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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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부 편집고문은 미주리대 농경제학 박사, 대한민국 농업통상대사, 아르헨티나 대사, 대통령 수석비서관(농수산) 역임.

최양부 편집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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