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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진품명품] 브루스 리와 지미 헨드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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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진품명품] 브루스 리와 지미 헨드릭스
  • 조성진 기자
  • 승인 2013.11.17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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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영화와 음악사를 바꾼 두 천재의 공통점 많은 명품 삶

[KNS뉴스통신=조성진 편집국장] 브루스 리는 무술 역사를 바꾼 세기적인 격투가이자 무비스타다. 지미 헨드릭스는 일렉트릭 기타사를 바꾼 위대한 연주인이다.

브루스 리가 주연한 <맹룡과강>과 <용쟁호투> 두 작품은 영화사적 의미가 크다.
<맹룡과강>은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최초의 홍콩 영화이고, <용쟁호투>는 홍콩과 할리우드가 합작한 최초 영화이자 무술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이 두 작품으로 브루스 리는 미국에서 성공한 최초의 중국 영화인이 되었다.

지미 헨드릭스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의 혁명적인 변화를 추구했으며 락음악의 새로운 양식미를 가져 왔다. 그의 음악과 연주스타일은 락과 기타가 가야 할 궁극의 지향점으로 남게 되었다.

한 사람은 무술 사상 최고의 카리스마로서 또 한 사람은 락음악 사상 최고의 카리스마로서 각각 공전절후의 존재로서 평가받는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선 여러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민족 국가이자 최고의 인종 차별 지역에서 자기 분야 최정상에 우뚝 선 유색인이라는 것이 그 첫 번째다.

브루스 리는 영춘권에서 당랑권, 복싱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운동을 통해 당대에 당할 자가 없을 만큼 빼어난 무술 솜씨를 지녔음에도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기까지 숱한 장애물들과 싸워야 했다.
지미 헨드릭스 역시 미국 사회가 가장 멸시하는 흑인이라 뛰어난 기타 솜씨와 음악성을 지녔음에도 오랫동안 언더그라운드에서 반주만 맡으며 빛을 보지 못했다.

브루스 리는 “싸움은 한방”이라고 했다. 두 번째 주먹이 나가는 순간 이미 상대가 대비를 하므로 모든 대결은 주먹 또는 발 한방으로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공격과 방어 등 다양한 기술들이 고도로 발전해가고 있는 현대의 종합 격투기에서 브루스 리의 이 ‘한방 논리’는 이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보는이에겐 환상과 같은 궁극의 체험을 전해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지미 헨드릭스 역시 연주 첫 음에서부터 임팩트를 주지 못하거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죽은 소리가 된다고 했다.

스타일 면에서도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브루스 리는 양손을 모두 사용해 쌍절봉을 휘두름과 동시에 양발이 독사의 입처럼 언제 먹이를 향해 튀어 나갈지 모를 만큼 기민한 스텝으로 상대를 교란시킨다. 그리곤 동물적인 괴성을 질러 댄다. 온몸이 무기인 셈이다.
지미 헨드릭스 역시 두 손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것도 모자라 이빨을 사용해 기타 줄을 튕겨대는 ‘티스(Teeth) 피킹’과 함께 신음소리 또는 절규에 가까운 굉음을 내며 연주를 했다.

더 놀라운 것은 두 사람 모두 같은 날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브루스 리는 1940년 11월 27일, 지미 헨드릭스는 1942년 11월 27일생이다.

브루스 리는 미국 서부인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고, 지미 헨드릭스 역시 서부의 위쪽에 위치한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브루스 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지만 1962년 워싱턴 주립 대 심리학부 철학과를 중퇴했다. 워싱턴 주립 대는 지미 헨드릭스가 태어난 시애틀과는 가까운 곳이다.

파괴력 또한 대단했다.

브루스 리는 발차기 스피드가 시속 140마일을 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일류 투수들의 직구가 95마일 내외라고 본다면 가히 살인적인 스피드다. 그는 이러한 스피드와 파워로 200파운드가 넘는 샌드백을 달걀 으깨듯 짓이겨버리곤 했다.
지미 헨드릭스는 한음 한음에서 전율이 일 정도로 자기 혼을 실었다. 그 때문에 그의 공연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감각적 상처를 안고 공연장을 나와야만 했다. 이것은 락 뿐만 아니라 재즈, 블루스, 포크, R&B 등등 전 장르에 걸친 음악인들이 공통적으로 받는 충격이었다.
영국의 한 현대음악사학자는 “대중음악의 진정한 테러는 지미 헨드릭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젊은 나이로 최전성기에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것도 똑같다.
브루스 리는 32살, 지미 헨드릭스는 27살에 각각 요절했다. 그리고 둘 다 시애틀 근교에 묻혔다.

일세를 풍미하다 요절한 천재는 죽어서도 쉴 새 없는 화두가 되듯이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브루스 리 사후 무술인이나 무술 영화계 등은 모두 그를 모방하려 했다. 그간의 검술 영화 중심이었던 중국 영화는 이후 스피디한 발과 주먹이 현란하게 조명 받는 본격 무술 영화 시대로 변화했다. 뿐만 아니라 제임스 코번, 척 노리스, 조지 레이젠비 등등 숱한 할리우드 스타들도 그를 따라 했다.

지미 헨드릭스 사후 락을 연주하는 근본적인 방법이나 시각이 바뀌었다. 감각의 극한을 치닫는 약물음악, 소위 사이키델릭은 월남전과 히피 무브먼트 등등 대내외적 상황에 따라 젊은 세대의 구세주로서 맹위를 떨쳤다. 또한 블루스와 락이 역동적으로 결합하는 지미 헨드릭스식의 사운드는 이후 락의 텍스트로서 자리했다. 프랭크 마리노, 로빈 트라워와 같은 골수 추종자에서 카를로스 산타나, 울리히 로스, 알베르토 라디우스, 존 버처 등에 이르는 많은 음악인들이 그를 따라 했다.

무술 영화계와 음악계를 돌이켜 볼 때 브루스 리나 지미 헨드릭스를 능가하는 인물이 없었다. 성룡이나 이연걸 등은 여전히 브루스 리에 비해 왜소하게 느껴진다. 90년대 음악 트렌드를 통채로 바꾸어버린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역시 지미 헨드릭스에 비한다면 그 존재감은 약하기만 하다.

수많은 무술 영화와 배우가 만들어지고 수많은 음반과 음악인이 등장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엄청난 산맥으로 다가오는 카리스마는 없어 보인다. 브루스 리와 지미 헨드릭스라는 두 천재의 아우라는 그래서 더욱 모든 것이 춘추전국시대 같기만 한 지금 그립고 또 그립기만 한 것인지 모른다.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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