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2:44 (목)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서울역홈리스연합회장’ 최성원 목사
상태바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서울역홈리스연합회장’ 최성원 목사
  • 박봉민·김학형 기자
  • 승인 2013.11.05 14: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장 낮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예수)에게 행하는 것이다.”(마 25:40)
▲ 채소는 썩으면 버려진다. 그러나 사람은 죽기 전까진 썩지 않으며, 버릴 수도 없다. 누군가의 쓰임을 위한 존재가 아니므로. 사진은 노숙자 무료급식소에 정기적으로 다소 상품성이 떨어진 식자재를 기부하고 있는 한 재래시장에서 가져온 빨간 피망. <사진=김학형 기자>

[KNS뉴스통신=박봉민·김학형 기자] ‘국민 소득 2만 달러’, ‘G20 국가’. 전후 한국 사회는 기적에 가까운 급속한 발전을 이루며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모두가 풍요롭고, 모두가 여유로운 시대.

하지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곳에는 한 끼 먹을 것을 걱정하고 매일 비바람 피할 곳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부조리로, 혹은 자신의 무능력으로, 혹은 또 다른 이유로 거리에 내몰린 사람들. 그들의 불행이 단지 그들만의 책임일까?

노숙자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부조리와 그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주장하며 16년 간 노숙자들의 친구이자 가족으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며 “가장 낮은 자에게 베푸는 것이 곧 나에게 행하는 것”이라는 예수의 말을 실천에 옮기고자 봉사를 시작했다는 최성원 목사(서울역홈리스연합회 회장).

▲ 최성원 목사.

최 목사는 이 일을 시작하며 자신이 “예수의 사랑을 실천한다고 생각했었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왜 과거형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받는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다고 부끄러워했다.

이제 최 목사에게는 그들이 예수이고, 그들이 사랑이며,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실천이다. “노숙자 문제는 어느 한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시대의 아픔”이라고 말하는 최 목사를 만나 노숙자를 비롯한 우리 시대 소외된 이들에 대한 문제와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에 대해 들어 봤다.

다음은 최성원 목사와의 일문일답.

■ 서울역홈리스연합회는 어떤 곳인가?
같은 일(봉사)를 하는 21개 단체, 목사님 12명 정도가 모여 만든 연합회다. 지난 7월에 임기 3년의 회장직에 선임됐다. 모두 어려운 이들을 돕는 봉사활동 단체들의 모임이다.

목회의 길로 들어선 특별한 이유가 있나?
주님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월남전에 파병됐을 당시 부상을 입고 병상에 누워서 매일같이 포탄 소리에 시달렸다. 한 부대가 전멸되기도 하는 몇 백 명이 죽는 가운데에서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다. (치유 뒤) 작전 나가서 괴로움 속에서 기도했다. ‘하나님, 살려만 주시면 당신을 위해 일하겠습니다’라고.

노숙자들에게 무료급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목사가 돼서 다시 베트남을 찾아가 우리가 저지른 일들에 대해 사과하고 봉사하고 싶었지만, 공산화되면서 그러질 못했다. 누구든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자는 마음이었다. 나는 목사이고 국가유공자인 동시에 국가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제일 밑바닥에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 주는 것이 좋다. 정말 주님을 따르는 종이라면 예수와 같이는 못할지언정 말씀한 대로 실천할 수는 있어야 한다. 아무리 교회에서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설교한다고 해도 행함이 없는 것은 믿음이 죽은 것이다.
그렇지만 나 역시도 여전히 성경 말씀에 부합된 삶을 사는 데 부족함이 없지 않나, 왜 나는 가르침대로 살지 못할까 매일 기도하고 회개한다.

▲ 최근 최 목사는 후원금이 뚝 끊겨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김학형 기자>

무료급식을 하려면 재원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재원은 어떻게 조달하시나?
후원금. 현재로써는 오로지 후원금뿐이다. 초기에는 개인재산 1억 원 정도를 썼고, 월남참전 국가유공자 수당(그는 월남전 국가유공자다.)과 제 자녀들의 도움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내 개인 통장에도 후원금 통장에도 잔고가 없다. 지난 6월부터는 아예 뚝 끊겨버렸다.

서울시 등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지원은 없나?
국가는 물론 구청, 시청에서 지원이 전혀 없다. 서울시는 담당 공무원이 현장에 잘 나오지도 않고 성과위주의 행정을 펼치고 있다. 일례로 시가 서울역 배식을 요일과 끼니별로 종교·봉사단체에 나눴는데, 한 번에 두 끼가 배식되거나 배정 단체가 중복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었다. 또한 관련 제도를 보완하거나 시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도 기존 제도를 고집하고 있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나마 한 재래시장에서 상품성이 떨어져 팔 수 없는 식자재들을 모아 보내주고 있어 무료급식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금 상황으로써는 당장 올 겨울이 걱정스럽다.

이주 노동자 문제에도 관여하고 있다고 들었다.
월남전을 겪으며 베트남어를 배웠다. 한국에 일하러 온 베트남 노동자들이 어려움을 겪으면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가능하다면 해결까지 나선다. 체불임금 해결이 주로 많은데 한번은 어느 베트남 노동자가 우리나라 공장에서 일하다 양 손의 손가락 모두를 잘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산재보험금으로 달랑 100만원이 나와 이상하게 여기고, 여기 저기 알아봤더니 공장주가 나머지를 빼돌린 거였다. 받아내서 다시 돌려줬는데, 너무 고맙다면서 한동안 매달 2~30만원씩 보내기도 했다. 베트남 노동자들을 위해 위문공연도 지금껏 15차례 열었었는데, 얼마 전 사기를 당하면서 잠정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조만간 재개할 예정이다.

▲ 사재까지 털어서 어려운 이들을 돕느라 그는 현재 지붕조차 제대로 놓지 못한 집에서 기거하고 있다. 치매로 방황하다 최 목사에게 도움을 얻어 재활 중인 김모씨가 그와 함께 무료급식에 쓰일 식자재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학형 기자>

노숙자들에 대해 사회 낙오자, 무능력자라는 인식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50~60대들 중에는 6·25를 겪으면서 전쟁고아가 된 사람들이 많다. 그 밖에 이런 종류의 불쌍한 사람들이 노숙자 전체의 52%다. 아무리 일할 능력이 있다지만 신원보증도 안되고 담보도 없는 사람들을 회사에서 받아줄 것 같나? 대부분 안받아준다.
특히, 나머지 48%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다. 교도소에서 한 20~30년 있다가 나오고, 정신병 환자들은 15년 이상 되면 병원에서 돈이 안 되니까 한 달 치 약만 주고 내보낸다.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정신공황 상태다. 돈은 없는데 직장에서는 안받아주니까 거리로 나오는 거다.

노숙자들의 근본적인 문제와 해결 방안이 무엇이라고 보나?
가장 큰 문제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앞서 말한 대로 사회적·제도적 도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건 맞지만 돈만 생기면 술이나 마시려고 하는 행태는 손가락질 받아 마땅하다. 나라에서 도와준다는 데 정작 그 대상이 일할 의지가 없다면 소용없는 거다. 급식은 수단 가운데 하나이고 자활을 돕는 것이 목적이다. 함께 지내며 무슨 일이든 하도록 시키고 권하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은 돈을 줘서라도 일을 보낸다.

노숙자 무료급식을 한 지 벌써 16년째다. 그동안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이 있다면?
노숙자들이 재활해서 스스로 잘 사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다. 지금껏 일을 찾아 자립하도록 도운 사람들이 200~300명 정도 된다. 오토바이를 사서 택배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아파트 경비를 하는 사람도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내가 올해 69살이다. 고백하건데 지금까지 봉사활동에서도 후회스러운 부분이 많다. 후원금이 모아지면 노숙자 30명 정도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함께 지내며 그들의 자립을 돕고 싶다.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준 주님에게 내 생애 마지막 약속을 했다. ‘죽기 전까지 이 한 몸 바쳐서 이웃들을 돕겠다’고.

박봉민·김학형 기자 khh@kns.tv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섹션별 최신기사
HOT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