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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조계산 정상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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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조계산 정상 표지석
  • 김학윤 수필가
  • 승인 2013.06.28 1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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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윤 수필가
나는 산을 좋아한다. 지난 40여년 동안 전국 여러 산을 답사 했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순천 조계산을 사랑하고 있다. 조계산엔 한국 불교 삼대 사찰 중 하나인 송광사와 고찰인 선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한 여성미 넘치는 산세들이다. 더욱이 등산코스가 다양하여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명산이다. 조계산과 나와의 깊은 사연은 우연한 작은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1990년 1월 초에 나는 농협승주군지부 화장실 앞에서 반짝이는 다이아 반지를 주웠었다. 그것을 주워 들고 곧바로 객장으로 달려가 “화장실 앞에서 반지를 잃어버린 분은 찾아 가세요”라고 구내방송으로 안내 했었다. 그러나 객장 마감시간이 지나도록 반지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었다. 부득이 경찰서에 습득물 신고를 했다. 그러고 나서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반년이나 지난 그 해 7월 초 경찰서로부터 “반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신고자가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그 반지를 인수해 가지고 돌아오면서도 끝내 주인을 찾아 되돌려 드리지 못해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내가 습득하기는 했으나 사무소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공적(公的)으로 처리하고자 직원들 의견을 들어 보았다. 불우이웃 돕기에 쓰자는 의견, 고객접대용 커피 값으로 쓰자는 사람, 심지어는 습득자에게 주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나는 완곡히 사양했었다. 결국 우리 사무소를 이용하는 주민들을 위해 쓰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표지석 건립계획 수립·추진

평소에 조계산을 등산하면서 안타깝게 여기던 것이 있었으니, 다른 명산의 정상에는 표지석이 다 있는데 유독 조계산에만 없어서 늘 허전한 느낌이었다. 이번 기회에 반지를 처분하여 정상 표지석을 세웠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직원들에게 정상 표지석을 세우면 조계산의 기상을 높이는 상징물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더니 전폭적으로 호응해 주었었다. 산악회 임원들과 의논하여 ‘표지석 건립계획’을 마련하고 추진에 들어갔다. 조계산은 전라남도 도립공원이므로 승주군으로부터 정상 표지석 건립승인을 받았다. 산악회에서 반지 처분금 30만 원을 기금으로 하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헌금토록 하였더니 90여 만 원이 모아졌다.

정상에 세울 마땅한 표지석(原石)을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산악회원들이 표지석[原石]을 찾기 위해 조계산 하천변을 두 달 동안이나 답사한 끝에 그 해 9월 초 송광천변에서 자연석을 발굴해 냈었다. 예술품처럼 모양이 빼어난 오석(烏石) 이었다. 좌대석(座臺石)도 송광천변에 깊이 묻혀있는 오석을 물 속에서 건져 냈다. 표지석과 좌대석이 확보되었으므로 건립 작업을 본격화하게 되었다. 서예가로부터 표지석 크기와 구도에 알맞은 ‘曹溪山將軍峰884m’, 뒷면에 ‘1990. 12. 16. 農協昇州郡支部山岳會建立’ 이라는 글씨를 받았다. 이어서 석재 가공공장에서 표지석에 글자 새기기와 좌대석 가공작업이 완료되었다.

다음은 정상으로 운반 작업에 들어갔다. 운반 작업은 송광면 내 힘이 센 장사들이 흔쾌히 맡아 주었다. 첫날 장사들이 힘만 믿고 돌을 지게에 짊어지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겟가지가 내려앉는 바람에 낭패를 보고 말았다. 부득이 운반방법을 바꾸었다. 마을에서 정상까지 2.7km의 능선을 따라 장대 2개를 1개조로 기차 레일과 같이 정상 쪽으로 놓고 돌을 끌어올리고 또 장대레일을 옮겨 놓고 끌어올리는 작업을 반복해 나갔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심하고 나무숲이 우거져 길이 없는 악조건에서 장사 분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사흘 만에 표지석과 좌대석을 정상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정상의 자연바위 위에 좌대석을 고착시키는 작업 그리고 좌대석에 표지석을 안전하게 세우는 데 애를 먹었다.

등산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일을 시작한 지 반년 만에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1990년 12월 16일 정상 표지석 제막식과 산신제를 모시었다. 승주군수와 지역 유지분들과 산악인들이 모여서 산신(山神)께 고하고 세상에 알렸다. 제막식에 참석한 분들은 진심으로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이제 조계산 정상에 격조 높은 표지석을 세웠으니 도립공원이며 명산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며 흐뭇해했었다. 앞으로 산악인들이 지역주민들과 합심·협력하여 산을 보호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자고 다짐했었다.

조계산에 정상 표지석을 세워 놓은 이듬 해 봄 나는 직장의 인사이동에 따라 서울로 이사했었다. 표지석을 세운 지 11년이 흐른 지난여름 조계산에 다녀왔다. 농협 퇴직 산악인 모임인 심산회(心山會)의 창립7주년 기념행사로 열린 조계산 등산을 통해서였다. 그 날 나는 11년 만에 장군봉에서 정상 표지석과 다시 만나고 있었다. 표지석을 세우기까지 겪었던 많은 사연들이 아련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변한 것이라고는 그동안 산악인들이 정상 등반 기념촬영을 하느라고 손으로 만져서 표지석이 번질번질하게 윤이 나고 있는 것뿐이다. 이날 장군봉을 둘러본 심산회 회장은 “우리 회원들이 전국의 명산들을 등산했으나 오늘 처음 본 조계산 정상 표지석은 그 어느 표지석보다도 자연미를 살려 멋지게 세워졌다”고 평가해 주었다. 장군봉(將軍峰)이라는 지명에 걸맞기라도 하듯이 마치 대장군(大將軍)이 좌우측에 장성들을 거느리고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자태는 조계산을 지키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우뚝 서 있는 웅장함 그대로라고 회원들은 입을 모아 감탄했다.

‘개천에서 용(龍) 났다’고 했던가! 송광천에 묻혀 있던 오석을 갈고 다듬어서 장군봉에 표지석으로 올려놓았더니 조계산의 명물이 되어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니 10여 년이 지난 오늘에야“ 아름다운 보람”으로 다가온다. 내 생애에 행운이요 축복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산으로부터 입은 은혜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젊은 시절 허리디스크로 고생할 때 등산을 통해 치유했었고 계속 산행을 하면서 산의 기(氣)를 받아 건강을 지켜 왔다. 항상 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조계산 정상에 산(山)사랑의 점(点)하나를 찍었을 따름인 것을…. 인간이 산을 사랑하는 것은 상생(相生)이요 공생(共生)의 우주원리에 순응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내 마음 속의 정상 표지석은 언제쯤 세워질는지.

장군봉을 뒤로하고 떠나오면서 생각해 보니 감회가 깊다. 사계절 아름다운 정경을 안고 있는 조계산, 더욱 아름다워지기를 기원한다.

김학윤 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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